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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Car&Tech

어느 멋진 하루

488 스파이더를 타고 트랙을 달렸다. 페라리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2018.07.30

 

저 멀리 150미터 표지판이 보였다. 난 속도를 줄일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인스트럭터가 탄 앞차의 테일램프가 묵묵부답이다. 100미터 표지판마저도 지나쳤다. 80미터 지점쯤이었을까. 그제야 붉은빛이 들어왔다. 그렇게 난 브레이크 디스크를 달구며 1번 코너로 들어갔다. 트랙에 진입하기 전, 인스트럭터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150미터 지점에서 속도를 줄일 거예요.” 내가 그를 잘 따라갔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린 둘 다 페라리를 타고 있었다. 그는 GTC4 루쏘T, 난 488 스파이더의 운전대를 잡았다. 여기는 인제스피디움. 평범한 차(나 같은 초보자라면 더더욱)라면 1번 코너 150미터 전쯤에서 속도를 줄이는 게 안전하다. 하지만 이건 페라리다. 그는 아마 차의 한계를 간과했을 것이다.


그런데 차의 한계를 간과한 건 그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그랬다. 난, 트랙을 달리며 내가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488은 페라리 양산차 중 가장 ‘레이시’한 모델. 난 정신없이 달리는 데에만 온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속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488, 아니 페라리는 운전자가 쾌락을 느끼는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있다. 일반 도로에서도 그 매력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든데, 트랙에서는 오죽할까. 난 들이닥치는 엄청난 희열을 감당하지 못했다. 


물론 기존 자연흡기 엔진보단 자극의 수위가 낮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엔진이 페라리답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경쟁자의 터보 엔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질감, 가속, 진동, 사운드. 페라리의 터보 엔진은 이 모든 부분이 한 차원쯤 높다. 가장 놀라운 건 정교함이다. 미세한 조작에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양산 터보 엔진은 이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사실, 페라리가 이 터보 엔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바로 반응이다. 이를 위해 그간 축적한 양산차 기술 대부분을 쏟아부었다. 반응에 집착한 이유는 간단하다. 페라리다운 운전재미를 살리기 위해서다. 코너의 정점에서 가속페달로만 궤적을 다듬은 후, 있는 힘껏 빠져나와보면 알 수 있다. 페라리는 한계만 믿고 차를 코너에 던진 다음 수습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걸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러려면 이런 정교함이 반드시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물론 488은 그 누구보다 정열적이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ESC를 끄면) 모든 코너를 옆으로 통과할 수 있을 정도다. 세상 최고의 신사인 척(하지만 능글맞은)하는 이탤리언과 비슷하다.


위험하진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SSC(사이드 슬립 앵글 컨트롤)가 타이어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게 막아주니까. 코너 통과 도중에 찬물을 끼얹지도 않는다. 개입 과정이 굉장히 정교해 한계를 파악하는 내 능력이, 내 오른발 힘 조절 스킬이 레이서만큼 좋아졌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직선에서 시속 250킬로미터를 향해 내달릴 때도 마찬가지다. 속도 상승에 비례해 커지는 안정감과 막강한 브레이크 성능 덕분에 두려움이 끼어들 새가 없다. 


“사실 이건 페라리 오너를 위한 프로그램이에요.” 페라리 공식수입원 FMK 홍보담당자의 말이다. 그렇다. 이 시승은 페라리를 타고 트랙을 달리는, ‘상위 0.001퍼센트’의 어느 하루를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탈을 쓴다고 갑자기 그런 사람처럼 살 수 있겠는가. 난 하루 종일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마냥 마음이 편칠 않았다. 그래도 이날 확실히 깨달은 게 있다. 요샌 동급에서 성능이 크게 뒤처지거나 유별나게 뛰어난 차가 거의 없다. 기술 상향 평준화와 환경규제 때문이다. 차제 크기, 구조, 엔진 등 제약과 재료가 빤한 슈퍼카 영역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다. 페라리가 진정 위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페라리는 속도 또는 기록에만 매달리는 도전자들과는 입장이 다르다. 성능은 물론 감성과 예술성까지 최고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껏 보란 듯이 그런 성과를 거둬왔다. 이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달리고 있을까. 페라리. 이 세 글자처럼 누구나 선망하는 브랜드가 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모터트렌드, 자동차, 페라리, 488 스파이더

CREDIT

EDITOR / 류민 / PHOTO / 페라리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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