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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력 높은 한국 자동차회사가 위기인 이유

자동차 생산력이 곧 생존력인 시대는 지났다. 소비자는 자동차 생산지를 신경 쓰지 않는다. 결국은 가격과 브랜드, 제품력이 생존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2018.07.06

 

한국에선 여전히 자동차 생산 국가를 따지지만 미국 소비자의 절반 이상은 자신이 산 차의 생산 장소를 개의치 않는다. 자동차 조사기관 ‘오토리스트’가 미국 내 신차 구매자 126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생산 지역 및 국가가 중요한가’라는 설문에 응답자의 53퍼센트가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설령 그 차가 중국에서 생산됐어도 구매 결정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람도 49퍼센트나 됐다. ‘Made in China’여도 브랜드 신뢰도가 높다면 문제없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어차피 완성차 생산은 조립 과정이 전부여서 모든 공장의 생산이 표준화돼 있고, 자동화율도 높아 근로자의 숙련도가 미치는 영향이 크게 줄어든 점이 반영됐다. 게다가 이제는 자동차회사가 아니라 부품기업이 직접 완성차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실례로 자동차 부품회사 마그나(MAGNA)는 오스트리아 그라츠 완성차 공장에서 지난해 말부터 재규어 요청에 따라 E 페이스를 생산해 유럽 내 판매 사업자에게 공급하고 있다. BMW 5시리즈의 일부는 물론 벤츠 G 클래스도 마그나가 생산한다. 푸조 RCZ도 ‘메이드인 오스트리아’가 부착됐다. 재규어 최초 전기차 I 페이스도 마그나가 만든다.  
 
그간 자동차회사는 연구개발, 생산, 판매를 모두 수행하며 성장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거대 완성차회사는 자체 생산공장을 세계 곳곳에 세우며 판매에 차질 없이 공급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분리된 것은 판매다.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판매 부문은 금융사가 연관될 수밖에 없고, 재고도 책임져야 했던 만큼 별도 사업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도 현대·기아차 일부 대리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판매사는 제조사와 계약을 맺은 별도 사업자들이다. 다만 이들은 재고를 운영하지 않는 위탁판매점 형태지만 수입사는 전형적인 재고 보유 판매사로 운영된다.  
 
판매가 분리되면서 서비스도 마찬가지 구조로 변해왔다. 아직은 제조사가 직접 서비스를 해주기도 하지만 판매와 함께 수행하는 사업자도 적지 않다. 단적인 예로 국내 자동차회사는 서비스를 직영과 대리점을 나눠 운영하지만 수입사는 서비스를 대부분 판매사가 책임진다. 둘 다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창구라는 점에서 판매자가 곧 서비스 제공자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생산이 점차 분리되고 있다. 자동차회사가 공장을 보유하는 것 자체가 점차 의미 없다는 뜻이다. 어차피 지금도 완성차회사 공장은 수많은 부품을 공급받아 조립하는 역할이어서 굳이 자동차회사가 공장을 보유할 필요성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실제 한국에서도 일부 차종은 부품회사에서 80퍼센트가량을 조립, 나머지를 완성차 공장으로 넘기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나머지 20퍼센트도 부품회사가 마저 조립해도 생산은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자동차회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바로 연구개발과 마케팅이다. 만들어 판매할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을 위탁받은 기업이 제품을 만들어주면 어떻게 판매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에만 치중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생산은 만약을 대비해 여러 공장에 맡기는 식이다. 
 
이처럼 개발, 생산, 판매 및 서비스가 분리되는 흐름은 각 분야의 경쟁 요소가 분명하게 달라서다. 연구개발의 경우 개발자 중심의 인재 확보가 우선이며, 생산은 투입되는 비용이 같을 때 시간당 생산대수가 많은 게 유리하다. 또한 판매는 소비 시장의 규모와 1인당 판매대수가 생존을 좌우한다. 따라서 연구 부문은 개발 인력이 풍부한 곳으로 이동하고, 생산은 저비용 국가에 몰리며, 판매는 시장 규모가 큰 곳으로 집중된다.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장벽에 한국이 위기라는 인식은 그만큼 미국 시장의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 부문 중에서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한 곳은 생산이다. 같은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이 여러 나라에 분산됐을 때 우선 고려 항목은 생산 효율이다. 물론 비용과 효율이 낮으면 불리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요소는 공장이 소재한 지역의 시장 규모다. 한 대를 만들 때 비용이 많이 들어도 많이 팔 수 있는 곳이라면 공장은 유지된다. 
그러나 비용도 많고 시장도 작다면 굳이 해당 지역에서 제품을 만들 이유가 없다. 미국 GM이 한국지엠의 군산공장 문을 닫은 결정적인 이유다. 만들어도 팔 곳이 없는 데다 생산 비용이 오르니 문을 닫아버렸다. 대신 같은 비용임에도 미국에 새로 공장을 짓는 이유는 연간 1900만대의 시장 규모 덕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자동차에 들고 나왔다. 자동차를 미국 안보와 연결 지어 관세장벽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두고 현대·기아차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쏟아진다. 그래서 미국 공장에 추가 투자를 결정했고, 이미 개발 중인 픽업트럭을 투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으로 생산의 절반을 수출하는 르노삼성과 한국지엠은 속만 타들어가고 있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생산되는 연간 10만대가량의 닛산 로그의 고향이 미국으로 바뀔 수 있고,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생산되는 트랙스도 미국 생산으로 전환될 수 있어서다. 생산 물량의 절반이 사라지면 그만큼 국내 자동차산업의 규모도 줄어들게 된다. 있는 그대로 보면 국내 일자리도 함께 없어진다는 의미다. 
 
그래서 정치적 타결이 또다시 필요하다. 지난 3월 철강의 수출 쿼터를 얻되 자동차 수입 기준을 완화한 것처럼 말이다. 다만 한국 내 자동차산업 규모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내줘야 할 다른 품목이 별로 없는 게 걸림돌이다. 시장 규모가 크면 좋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따라서 지금은 연구개발 능력을 더욱 키워야 한다. 생산에서 일자리가 줄어들기에 연구개발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마저 사라지면 한국 자동차산업은 위기를 넘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글_권용주(<오토타임스> 편집장)
 
 
 
 
 
모터트렌드, 자동차, 자동차 칼럼, 한국 자동차회사가 위기인 이유

CREDIT

EDITOR / 이진우 / PHOTO / 셔터스톡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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