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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이 열리던 날

서울에 궁이 있다는 건 모두 다 안다. 하지만 서울의 궁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건 경험한 자만이 안다. 밤빛이 더욱 깊고 청명해지는 이 계절, 궁에서 잠깐의 초대장이 발부됐다. 서울에서 벌어지지만, 나만 몰랐던 고궁의 여름밤과 낮의 이야기.

2018.06.05

취하고 취하는 밤, 경복궁 별빛야행 
바람 선선하고 고즈넉한 초여름 밤, 궁에서는 특별한 초대장이 발부된다. 소수 인원에게만 오직 지금 허락되는 특별한 2시간의 여행. 그 종착지는 경복궁, 그것도 밤이다. 도심의 분주함이 잦아드는 저녁 7시 40분. 치열한 예매 전쟁 속에 ‘경복궁 별빛야행’ 티켓을 거머쥔 행운의 60명이 흥례문 앞에 달뜬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였다. 궁중 음식 체험과 전통 공연, 경복궁 야간 해설 탐방이 어우러진, 경복궁 별빛야행이 그 세 번째 챕터를 뜨겁게 열었다. 올해는 경복궁의 장소적 특성에 걸맞은 스토리텔링이 더해져 기대감을 높인다. 설명을 하는 이도, 궁을 지키는 이도, 모두 과거로 돌아간 채다. 궁에 내려앉은 고요한 별빛은 낯선 곳으로의 시간 여행을 재촉한다. 세자와 세자빈이 거처한 동궁(자선당, 비현각)에선 왕세자와 신하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궁궐의 부엌인 소주방으로 안내된다. 그곳에는 왕과 왕비의 일상식인 12첩 반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도슭수라상’이 대기 중이다. 도슭은 도시락의 옛말로, 대하잣즙채, 육포장아찌, 우족병, 죽순전 등이 4단 유기합 도시락에 담겨 있다. 마치 왕의 수라를 거들듯, 궁중 나인들이 관람객의 저녁 식사를 거든다. 식사와 함께 어우러지는 국악 창작팀의 공연은 그 정취를 더한다. 진도아리랑, 군밤타령으로도 모자라 비틀스, 피아졸라의 음악을 국악으로 만나는 낯설지만 흥미로운 무대가 별빛 아래 펼쳐진다. 이 순간, 세상의 모든 부러움은 사라진다. 이제 경복궁 후원으로 산책을 나설 차례. 궁 안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진 소헌왕후의 처소인 교태전을 돌아, 별빛야행을 위해 허락된 집경당, 함화당의 내부가 공개된다. 11세에 궁에 들어와 20년을 훌쩍 넘어 상궁이 되는, 궁녀들의 일상이 눈으로 그려지는 듯하다. 별빛야행의 하이라이트는 경회루. 경회루 연못에 은은하게 비친 또 다른 경회루와 나무들의 운치는 밤이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이곳 경회루에서는 뱃놀이도 하고, 물이 얼면 스케이트도 탔단다. 경회루 누상에 올라 고즈넉한 경복궁의 정취 속에 국악 독주를 들으니 잠시 왕이 된 듯 걸음걸이도 느려진다. 경회루 역시 평소에는 관람이 허용되지 않으니, 더욱 특별한 밤이다. 2시간의 짧은(?) 여행은 근정전을 끝으로 현실로 돌아온다. 경복궁의 밤이 건네는 정취와 밤바람이 그리운 이라면, 9월 1일부터 15일, 10월 6일부터 20일까지 열릴 하반기 별빛야행을 노려볼 것(6월 행사까지 이미 예약이 마감됐다).

 

 

3궁 4색, 고궁 음악회 
고궁을 산책하는 것도 좋지만 음악과 함께라면 그 여운은 더욱 깊어질 터. 주·야간 고궁을 찾는 관람객의 마음을 잔잔하게 보듬어줄 고궁 음악회가 어김없이 찾아왔다. 흥겨운 우리 가락, 빛과 가무악의 향연, 화려한 고궁을 배경으로 피어나는 우리 가락의 향기가 봄을 지나 여름, 가을 내내 고궁 곳곳을 채운다. 옛 집현전인 ‘수정전’ 전각 특별 무대에서는 7월까지 경복궁 주간 공연이, 창경궁 통명전에서는 5월 20일부터 6월 2일, 7월 22일부터 8월 4일까지, 창경궁 야간 공연이 오후 8시부터 시작된다. 운치에 더해 화려함까지 원한다면 수정전 월대에서 펼쳐질 경복궁 야간 공연(6월 17일~30일, 9월 16일~29일, 10월 21일~11월 3일)을 추천한다. 화려한 빛의 향연과 눈과 귀가 즐거운 고궁의 밤. 음악은 밤을 빛으로 물들인다. 

 

 

맛과 멋의 밤, 수라간 시식공감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줄을 서고, 허둥지둥 뒷사람에게 떠밀려 나서는 맛집 탐방을 단 하루만큼은 멈춰도 좋다. 누구나 맛볼 수 없는 진정한 미식의 밤. 궁중 음식 체험과 전통 국악 공연이 어우러진 ‘수라간 시식공감’이 5월 20일부터 6월 2일, 6월 17일부터 30일까지 1일 2회 총 48회에 걸쳐 진행된다. 장소는 경복궁 소주방. 물론 늦은 밤이다. 올해는 궁중 음식 콘텐츠로 궁중 병과를 선보이는데, ‘여름의 절기’를 주제로 막걸리와 멥쌀가루를 반죽하여 부풀려 찐 대표적인 여름철 떡 ‘증편’과 말린 산사를 끓여 설탕으로 단맛을 맞춘 산사화채 등이 준비된다. 경복궁의 야경과 함께 어우러진 맛과 멋. 이 특별한 풍류의 밤은 회당 60명, 예매로만 만날 수 있다. 

 

 

달밤의 로맨스, 창덕궁 달빛기행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은? 바로 창덕궁이다. 올해로 9년째를 맞는 ‘2018 창덕궁 달빛기행’이 10월 28일(~5월 27일, 하반기 8월 23일~10월 28일)까지,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이곳 창덕궁에서 펼쳐진다. 은은한 달빛 아래 창덕궁 후원을 거닐며 창덕궁과 조선 왕조의 이야기를 전문 해설사에게 들을 수 있다. 중간에 곁들이는 맛있는 다과와 전통 예술 공연은 또 다른 백미. 은은한 달빛 아래 후원의 운치를 만끽할 수 있는 산책만으로도 모든 잡념은 사라진다. 돈화문을 시작으로 조선 태종 때 건축된 것으로 현존하는 궁궐 안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금천교를 지나 인정전, 낙선재, 연경당 등 여러 전각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다. 더욱이 올해는 ‘왕의 사계’를 주제로 한 ‘그림자극’도 새롭게 추가됐다. 낙선재 후원의 누각 상량정에 들리는 대금의 청아하고 깊은 소리는 도심의 밤을 더욱 깊게 물들일 테고. 창덕궁 달빛을 따라 그저 조용히 손잡고 걸어볼 것.  

 

 

정예의 사열 의식, 첩종 
경복궁 흥례문 앞. 200여 명의 조선 군인이 모여 있다. ‘궁궐 호위군 사열 의식 첩종’이 재현되는 행사다. 첩종은 <경국대전>에 나와 있는 어전 사열 및 비상 대기에 사용되는 큰 종을 의미하는데, 궁궐에 입직한 군사뿐만 아니라 문무백관 및 중앙 군인 오위의 병사들까지 모두 집합하여 점검을 받던 사열 의식을 칭한다. 7번째를 맞는 첩종 행사는 쉽게 볼 수 없는 조선 전기의 복식과 무기, 의장물을 고증에 따라 재현했으며, 특히 올해는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되는 아동대(뒷날의 위급함을 대비하기 위해 소년들로 이뤄진 부대)의 검술 시범을 새롭게 선보인다. 10월 6일부터 9일까지 오전 11시와 오후 2시 하루 두 차례 열린다. 

 

 

단 1시간의 고요, 다례 체험 
이것은 단지 차 한 잔을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7월 1일까지 매주 주말 경복궁 자경전에서 열리는 다례 체험. 약 1시간 정도 잠시 모든 생각을 접어둬도 좋다. 당신을 행복하게 괴롭힐(?) 유일한 소음은 바람이 될 터이니. 차 한 잔과 더불어 선조의 멋과 가치를 체험하는 특별한 시간. 더욱이 평소 관람객 입장이 허가되지 않는 자경전 대청마루에서 열리니, 이 또한 얼마나 특별한가. 남아 있는 하반기 다례 체험은 9월 1일부터 10월 28일까지로, 예약 참가 신청은 1부 20명, 2부 10명, 현장 접수 10명이다. 커피 한 잔 대신, 고즈넉한 시간과 차 한 잔이 그리운 이라면.    

 

 

이색 시간 여행, 대한제국 외국 공사 접견례 
고종황제와 대한제국으로의 시간 여행. 올해로 9년째 진행되는 대한제국 외국 공사 접견례는 1900년 대한제국 시기 외교 상황을 연극으로 재구성, 생동감 있는 역사의 한 장면을 엿볼 수 있는 재현 행사다. 외국 공사들이 고종을 알현하는 의례와 연회를 생동감 있게 펼치는데, 관람객은 당시 고종황제가 외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세운 한국외국어학교의 학생이 되어 접견 의례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설정으로 구성된다. 덕수궁 석조전에서 접견한 후에는 즉조당 앞마당으로 이동, 당시 연회를 재현하듯 다채로운 공연이 이어진다. 비록 실제 연회에 비해 소규모지만, 1900년대 초 세계 열강과 나란히 서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꿈을 떠올리게 하는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덕수궁 정관헌 및 즉조당에서 열리는 이 행사의 하반기 스케줄은 9월 1일부터 24일까지 매주 주말 열린다. 

 

 

헛헛한 날, 덕수궁 풍류 
늦은 저녁, 궁에서 즐기는 음악회. 더구나 적막이 내려앉고 도심 불빛마저 고요히 숨을 멈추는 시간이다. 궁의 소리를 지배하는 것은 쨍하고 그윽한 창소리와 북소리뿐이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즐기는 이색 야간 전통 예술 음악회. 덕수궁 풍류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전승자들의 열정적인 춤과 음악이 그 무대를 채운다. 두 해 전, 홀로 이곳에 앉아 듣던 거문고 소리가 아직도 가슴에 쟁쟁히 담겨 있으니. 10월 25일까지 덕수궁 정관헌에서 펼쳐진 덕수궁 풍류의 자세한 프로그램과 출연진은 홈페이지(www.chf.or.kr)를 참고할 것. 

 

 

 

 

 

더네이버, 경복궁, 별빛야행

CREDIT

EDITOR / 설미현 / PHOTO / 양성모(경복궁) /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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