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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Stars&People

진짜 고릴라를 만나다, 사석원

사석원 작가를 설명할 때는 늘 ‘인기’라는 단어도 함께 따라붙는다. ‘당나귀 작가’로 더 익숙한 사석원이 3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이번에 그는 낯선 고릴라와 함께 찾아왔다. 풍랑 속에 사투 중인 고릴라, 십자가에 매달린 고릴라, 다양한 형상의 고릴라 앞에 사석원이 있다.

2018.06.04

 

작품의 유명세야 익히 알던 바고, 특유의 선한 얼굴로 평온과 익살 사이에서 묘하게 미소짓는 그가 늘 궁금했다. 당나귀 작가로 유명한 사석원. 노랑에서 초록으로 빛의 시간이  달리는 사이, 호랑이, 부엉이, 소, 당나귀 등 형형색색 동물이 다시금 그의 화폭 안에서 기지개를 켠다. 더구나 이번 전시에는 낯선 고릴라까지 등장했으니. 고릴라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한 내게, 전시 오프닝 준비로 온종일 시달렸을 그가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로 먼저 인사를 건넨다. “이제 아줌마 호르몬이 나오고 있어요(웃음). 이 안경요? 파리에서 샀어요, 브로치는 도쿄요.” 울적할 때면 쇼핑하러 돌아다니기를 좋아한다는 사석원. 파리에서 산 화려한 무지개 테두리 안경과 앙증맞은 브로치, 화보에서나 볼 법한 총천연색 양말을 점잖은 바지 속에 감춘, 그의 범상치 않은 속내가 더욱 궁금한 참이다. 인기와 거장의 반열에 선 그가, 식구들 옷을 다 사다 줄 만큼 쇼핑을 좋아하고, 피할 수 없는 아줌마 호르몬과 기분 좋은 동거를 펼치고 있다니. 낯설지만, 배시시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제 작업실은 방배동 쪽이에요. 그곳에서만 벌써 23년째죠. 나는 나가자마자 술집이, 밥집이 있는 곳이 좋아요(웃음).” 그런 의미에서 이곳 평창동은 자신에겐 너무 고요한 동네라며 그는 웃는다. 꾸밈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쇼핑왕에, 아줌마 호르몬 보유자라는, 내적 단서를 교묘히 숨긴 사석원의 진짜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울 것 같다는 확신이 몰아치는 순간이다.

 

 

고릴라와 청춘 사이   
“지구상에 많은 동물이 있는데 고릴라는 사람보다 순수해요. 깊은 연민이 느껴지는 눈빛을 가졌죠. 인간 역시 태초에는 그러했을 테지만, 문명화 과정에서 사람에게는 그런 눈빛이 사라졌어요.” 보통 동물 하면 귀엽거나 순수하거나인데, 고릴라에게선 희로애락의 감정이 느껴진다. 사석원은 그 고릴라의 눈빛을 이번 전시에 기꺼이 끌어들였다. 세 챕터로 구성된 신작 회화 40여 점.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는 고릴라를 통해 고된 가장의 삶을 상징화한 ‘출범’ 연작, 두껍게 바른 물감을 다시 지워가는 행위 속에 다시 희망을 담아낸 ‘희망낙서’ 연작, 여성의 누드와 강렬한 필선으로 청춘 시절의 열망과 그 원초적 힘을 구현한 ‘신세계’ 연작으로 구성된다. 6월 10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펼쳐질 사석원 개인전 
<희망낙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청춘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그에게도 청춘이 있었고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현재를 살고 있다. “제가 색동을 좋아해요. 나무로 물감을 밀어 덧칠한(지워낸) 선이 꼭 색동의 선 같죠.” 이번 전시에는 기존 작업과 다른 지우기 기법이 등장한다. 긴 막대기로 두텁게 물감을 바른 캔버스 위를 마치 지워내듯 휘젓는다. 캔버스 위에 덧칠된 색동 선은 고장 난 TV 화면 같기도 하고, 그 형태만 보면 바코드를 떠올리게 한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석원만의 바코드 말이다. 지워진 흔적 뒤로 보이는 제3의 색채. 사석원은 지워냄을 통해 청춘이라는 이름하에 화석처럼 굳어진 기억을 보듬고, 다시금 희망을 덧칠한다. 
“원래 동물을 좋아해요. 동물원 가는 것도 좋아하고, TV도 동물 관련 채널을 즐기죠.” 그것도 모자라 그는 ‘주인 잘 만난 토끼’를 5년째 키우고 있다. “남자인데, 토식이예요. 내가 소파에 앉으면 곁으로 와 엎드려 있어요. 조용한 강아지(?)에 가깝죠(웃음). 근데 이 작은 게 되게 위안을 줘요.” 청계천을 거닐다 발견한 새끼 토끼. 배춧잎을 먹고 있는 그 녀석을 보고 숙명이다 싶었단다. 그러니 호랑이, 부엉이, 닭, 토끼, 당나귀 등 그의 지극한 동물 사랑이 화폭으로 옮겨간 것은 자연스러운 순리다. 
“제가 일곱 살 때야 말을 시작했어요. 큰손자가 말을 못하니, 얼마나 놀랐겠어요. 소통의 수단으로 그림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50여 년. 이제 사람들은 그의 그림만 봐도 사석원이라는 이름 석 자를 떠올린다. 밑그림도 없이 캔버스에 수십 개의 유화 물감을 쭉 짜고 마치 붓 하나로 수묵화를 그리듯 특유의 거침없는 붓질로 캔버스를 활보한다. 이때 그는 서양의 붓 대신 털이 긴 동양의 붓을 사용한다. 서양의 질료와 동양의 도구가 만들어낸 궁극의 앙상블이랄까? 어떤 날은 꽃을 나르는 당나귀로, 기백 넘치는 호랑이로, 또 어떤 날에는 곡예사로. 그만의 호방한 터치와 원초적 생명력으로 꿈틀대는 화폭은 더없이 신비하고 순수한 그만의 세계를 만든다. 화려함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사석원의 화폭은 그 어떤 계산도 잊은 채, 조용히 마음을 흔든다. “아직도 감을 못 잡을 때가 대부분이에요. 피카소, 마티스는 참 대단한 거예요.” 한평생 붓을 잡았지만, 아직도 화폭 앞에선 헤맨다는 그의 말이 오히려 위안으로 다가왔다면, 그는 이해할까? 

 

 

마지막 세대의, 낭만화가? 
“광화문에서 그림을 배웠죠. 사춘기라 할 고등학생 때. 거기 학원에서 이름 없는 화가들과 술 마시고, 색싯집 다니고. 그땐 교복 입고 스탠드바에도 다니고. 그런 분위기 좋아해요(웃음).” 지금이라면 상상도 안 가는 일이, 그 시절엔 가능했다. 아직 사석원은 2G폰을 쓴다. 하나 이는 그가 아날로그 세대라는 단서와는 거리가 멀다(물론 컴퓨터도 잘 사용하지 못하지만). 사석원은 그의 말마따나,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세대에 속한다. “옛날에도 지금의 일품당 골목 쪽에 자주 가곤 했죠. 광화문은 아직도 40년 전이나 비슷해요.” 애주가보다는 술자리를 즐긴다는 그. 맛도 맛이지만 단골집을 정할 땐 그 집의 주인을 본단다. “학생 때 아현동에 살았는데 그곳에 야한 술집이 많았어요. 친구처럼, 오빠처럼 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어머니가 오셨다 가시면 걱정을 많이 하셨죠(웃음). 물론 그땐 힘든 시절이었죠. 살던 집에 쥐가 하도 많아서, 이럴 바엔 쥐를 길러보자 싶었어요. 쟁반에 쌀을 담아놓고 길렀죠. 왜? 내가 쥐띠야(웃음).” 외로워서 쥐를 키웠다는 황당한 괴짜 청춘과 아현동 형부라 불리며 야한 술집 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스스럼없이 모델을 자처하며 농을 치던 그 시절. 사석원은 그 시절을 ‘낭만’이라는 두 글자로 기억한다. “내 아이들의 청춘요? 나쁘지 않은데 밋밋하죠. 질펀하게 살아봐야 하는데. 시대 자체가 낭만적이지 않고 그때는 다 포용되던 시절이었죠.” 힘들고 암울했지만 낭만이 있었던 청춘. 낭만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사석원은 어쩌면 낭만의 마지막 세대이자, 여전히 낭만을 즐기는 낭만화백이 아닐까.   
“새벽 4시 노량진 수산시장! 사람들이 거기 업자인 줄 알아요(웃음). 장화 신고. 뭐하냐고요? 물고기도 보고. 요리는 안 해요, 사기만 해요.” 예술가들의 옛 살롱처럼, 사석원만의 살롱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노량진 수산시장이라 답한다. 물론 단순히 그림 소재를 찾기 위해서는 아니다. 살아서 꿈틀거리고 생명력 넘치는 삶의 현장, 그가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는 이유다. 사석원만의 현대판 살롱. 새벽녘 그곳에 가면 분명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함 속에 감춰진 들끓는 괴짜 본성과 낭만이라는 이름의 청춘. 미소 뒤에 감춰진 그만의 호방한 진짜 청춘을 본 듯도 하다. “100만원을 가지고 가장 잘 쓰는 방법은 여행이에요. 막내가 중국에서 공부 중인데, 그 나라에서는 생선을 잘 못 먹어서 일본을 자주 가는 편이에요. 20년간 똑같은 식당, 똑같은 호텔에 가죠. 아들이 초등학생 때엔 8개월 동안 파리 술집을 100군데 정도는 다녔어요.” 이야기를 툭 터놓고 나눌 수 있는 곳. 여행지의 술집만큼 좋은 곳이 없는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여행을, 술집을 좋아하는 이유일 게다. 문득 전시장에 새겨진 문구가 떠올랐다. ‘수평선에 태양이 눕고 내 청춘은 당나귀 타고 총총 사라졌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른인가?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이제 그에게 답을 듣고 싶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른인가요? “한숨이 나오네(웃음). 내년쯤 답하면 안 될까?” 그는 꼭 내년엔 답을 주겠노라며 웃었다. 그곳엔 순박한 당나귀와 가장 낭만적이고 호방한 고릴라가 웃고 있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가족, 2018, Oil on Canvas, 162.2×130.3cm, 황소1, 2017, Oil on Canvas, 162.2×130.3cm, 곡예단, 2017, Oil on Canvas, 167.5×233cm

 

 

 

 

 

더네이버, 작가 인터뷰, 사석원

CREDIT

EDITOR / 설미현 / PHOTO / 김제원 /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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