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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니체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니체>는 니체 전문가 이진우가 니체의 사상적 뿌리를 찾아 나선 탐험의 기록이다. 그의 여정은 ‘생가’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2018.05.28

프라도 미술관에 처음 갔을 때 난 여행 이력이 어느 정도 되었다. 즉 ‘원본’을 보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대략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의 자만심은 두 번 강렬하게 깨졌는데, 하나는 히로니뮈스 보스의 그림을 보았을 때였다. 천하의 달리조차 그 앞을 지날 때는 질투심 때문에 눈을 가렸다는 그림. 그 작품 앞에서 오랫동안 떠나지 못하고 서성였다. 나는 그때 관용적으로 쓰이는 “떠나지 못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또 하나는 내가 생각해도 뜻밖의 경험이다. 어릴 때부터 화집을 끼고 산 나는 달리의 흐느적거리는 기괴한 그림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접 본 달리의 그림은 내가 그동안 본 것과 같은 그림이 아니었다. 화집에서 본 그림은 달리가 심혈을 기울인 디테일이 살아 있는 원본의 투박한 재현이 아니라, 그저 아예 다른 그림이었다. 나는 달리의 그림 속으로 거의 고꾸라져 들어갈 뻔했다. 마치 그곳이 달리가 살고 있는 집인 듯. 그림은 그럴 수 있다. 아무리 인쇄에 심혈을 기울인다고 해도 일단 크기 차이가 있으니까. 네로가 파트라슈와 함께 그토록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보고 싶어 한 이유는, 그저 화집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다른 것도 그럴까? 가르시아 로르카가 생전에 지낸 집에 가서 그의 친필 원고 몇 장을 들여다본다고 인쇄된 책에서 느낀 감동이 증폭될까? 연금술사 골목에 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옛 작업실에서 그의 흔적을 더듬어본다고 카프카의 난해한 작품이 쉬워질까? 그게 철학자라면 어떨까? 
이진우의 <니체> 부제는 “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니체 전집 편집위원, 한국 니체학회 회장을 지내고 <니체의 인생강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니체, 실험적 사유와 극단의 사상>을 쓰고 니체의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유고(1870년~1873년)> 등을 번역한 명실상부한 니체 전문가다. 그는 니체의 사상적 뿌리가 어디로 어떻게 뻗어나갔는지, 니체가 무엇에 영감을 얻었는지 알고 싶어 하는 우리를 위해 그의 흔적을 직접 찾아간다. 그의 여정은 보통 문학 기행이 그렇듯 ‘생가’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가 판단하기에 니체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바젤 대학 교수직을 버린 후 토리노에서 몰락하기까지 정확히 9년 반 동안 그가 방랑했던 길”을 따라간다. 10년간 일한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간 까닭은 무엇일까에서 니체에 대한 이해는 시작된다. 
짐작하다시피, 이 여행은 단순히 풍경을 따라가는 관광이 아니다. 얽히고설킨 포도나무 줄기에서 포도가 주렁주렁 열리듯 저자의 니체 철학에 대한 설명이 매듭마다 달린다. 질문은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책상에 앉아서 읽는 니체와 그가 살았던 곳에 가서 보는 니체는 다를까? 화집과 원본의 차이만큼 다를까? 
저자는 말한다. “내가 니체의 방랑길을 따라 나섰을 때는 사실 외줄타기 광대의 심정처럼 위태로운 삶에서 벗어날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나의 삶을 전적으로 파괴하고 개조할 다이너마이트를 기대하고 떠났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니체가 삶을 사유하며 겪었을 고통과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는 몸부림에 대한 공감의 여운과 이미지들이다. 여운이 있는 여행은 우리를 서서히 바꾼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삶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질문의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미리 그 길을 걸어본 자로서 그는 우리에게 권한다. “니체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니체에 관한 책을 덮고 그가 걸은 길을 걸으면서 그를 경험하는 것이 더 나은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그 길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니체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이다. 백 명의 전문가가 내 인생의 거장을 찾아가며 쓰는 백 권의 책 시리즈는 이제 막 시작했다. 직접 원본의 감동을 맛보는 것만 못하더라도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함께 걷는 그 길이 ‘내 인생의 거장’을 이해하는 데 만만치 않은 도움이 되리라. 이 책을 들고 직접 그 길을 나서는 거야 말할 것도 없고. 

 

 

 

 

 

더네이버, 클래식 클라우드, 니체

CREDIT

EDITOR / 설미현 / PHOTO / 김도윤 /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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