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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Car&Tech

배기음 속에서 뿜어내는 카리스마

GT를 몰고 먼 여행을 떠나는 나를 상상한다. 몸은 복잡한 도심을 달리지만 마음은 푸른 바다를 향한다. 이것이야말로 GT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2018.05.08

 

그란 투리스모(Gran Turismo)는 대장정이라는 뜻이다. 옛날 유럽 귀족의 자녀들은 학업을 마치면 유럽 전역을 돌며 견문을 넓혔다. 그때 마차를 타고 다닌 여행을 그란 투리스모라고 했다. 그랜드 투어러(Grand Tourer)는 그란 투리스모의 영어 표현이다. 지금은 자동차에서 하나의 장르를 이르는 말이 됐는데 장거리를 빠르게 달리는 고성능 럭셔리카를 말한다. 부자들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유명한 휴양지로 여행하는 차들 말이다. 값비싼 차들은 그렁대는 배기음 속에서 뿜어내는 카리스마가 압권이다. 


장거리를 빠르고 편하게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그랜드 투어러는 대체로 커다란 엔진을 얹는다. 마음만 먹으면 스포츠카를 따돌리는 실력도 갖췄다. 스포츠카와 달리 안락하며 편의장비도 풍성하다. 그랜드 투어러를 GT라고도 하는데 대부분 대형 보디의 2도어 쿠페 스타일로 2+2인승 객실이 기본이다. 뒷자리는 사람이 타는 대신 가방을 던져놓는 자리다. 아프간하운드 같은 우아한 개 한 마리가 뒷자리에 탄다면 멋을 더할 수 있다. 고급차인 만큼 요즘 기준으로 값을 매긴다면  2억원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런 차가 많아진 건 1950년대부터다. 페라리, 애스턴마틴, 벤틀리 쿠페, 마세라티, 재규어 등 주옥같은 차가 떠오른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300 SL 같은 스포츠카도 GT 범주에 넣을 수 있다. GT의 역사가 긴 유럽에서 어쩌다 고급 호텔에 들를 때면, 만나는 GT마다 그 ‘아우라’에 넋을 잃게 된다. 백발의 노부부가 탄 GT가 굉음을 토해낼 때마다 그 멋진 삶을 동경한다. 


오늘 온 페라리는 이탈리아에서도 가는 곳마다 시선을 끌어모으는 대표적인 GT이자 모두의 드림카이기도 하다. BMW 6시리즈 GT는 4도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전통적인 GT라 할 수 없다. 그래도 BMW가 GT라고 주장하니 관심을 가져본다. 

 

박규철 편집위원이 루쏘의 운전대를 잡고 너른 공터를 빙빙 돌고 있다. 다음 장면은 상상에 맡기겠다.

 

FERRARI GTC4LUSSO T
페라리는 GT와 스포츠카만 만든다. 488과 슈퍼패스트가 스포츠카이고, 포르토피노와 GTC4루쏘가 GT다. 내 눈에는 황홀한 차가 모두 같아 보이지만 GT가 조금 더 편하고 여유롭다. 대부분의 GT는 엉덩이가 날렵한 패스트백 쿠페처럼 생겼지만 페라리 GTC4루쏘(이후 루쏘라 부른다)는 2도어 쿠페의 뒷부분을 왜건처럼 만든 ‘슈팅 브레이크’ 스타일이다. 과거 귀족들이 사냥용으로 쓰던 슈팅브레이크는 GT의 한 종류다. 대부분 주문생산으로 만들어졌기에 고급차 중의 고급차다. 


오늘 시승차 루쏘 T는 루쏘의 V12 자연흡기 엔진 대신 3.9리터 V8 터보 엔진을 얹고, 네바퀴굴림을 덜어내 뒷바퀴굴림으로 만들었다. 물론 값도 내려갔다. 실속파 루쏘인 셈이다. 최고출력이 680마력에서 610마력으로 줄었지만 토크는 오히려 늘었다. 페라리 488과 캘리포니아 T에도 얹히는 V8 터보 엔진은 <엔진 테크놀로지 인터내셔널>이 수여하는 2016~17년 ‘올해의 엔진’ 상을 받았다. 루쏘 T는 고객의 요구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V12 루쏘를 타보니 네바퀴굴림이 필요 없었다, 페라리를 타고 눈길을 달릴 일이 없다, 뒷바퀴굴림 차의 핸들링 밸런스를 맛보고 싶다 등등 다양한 요구를 반영했다. 페라리 수요가 많은 중국에서 엔진 배기량이 4리터 이하면 자동차 세금이 적은 것도 이유가 됐다.


루쏘 T는 그냥 루쏘보다 무게가 50킬로그램 가볍고 연비가 30퍼센트 좋다. 앞머리의 트랜스퍼 기어가 없어져 앞뒤 무게배분도 46:54로 개선됐다. V12가 있던 자리에 V8을 얹어 텅 빈 듯한 엔진룸은 넉넉한 크럼플  존을 만든다. 언더스티어가 줄고, 롤이 적어지며 스티어링 반응이 빨라졌다. V12와 같은 전자식 디퍼렌셜 컨트롤과 리어 휠 스티어링으로 불안한 자세를 바로잡는다. 


겉모습은 루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휠베이스가 긴 덕에 뒷자리에 타기가 어렵지 않다. 넉넉한 뒷자리와 화물공간은 슈팅 브레이크 디자인을 채택한 결과다. 4인승 GT라 함은 네 사람이 편하게 탈 수 있다는 뜻이다. 루쏘의 고객은 젊은 사람의 비중이 크다는데, 친구들과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나누는 모습이 그려진다. 슈퍼카는 남들이 알아줄 때 기쁨을 더할 수 있다.


붉은색 대시보드는 더 이상 화려할 수가 없다. 화려한 실내는 마무리가 깔끔하고 나마저 고급스럽게 한다. 페라리만의 스티어링휠과 패들시프트, 주행모드를 설정하는 마네티노 스위치가 나를 레이서로 만든다. 쿠션이 얇지만 몸의 곡선을 따라 흐르는 시트가 편하다. 조수석 앞에는 주행 정보를 제공하는 창이 마련됐다. 속도와 태코미터, 기어 단수, G 포스 등이 표시돼 동승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나의 운전 실력을 뽐낼 수 있다.


루쏘 T는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이 3.5초다. 말 그대로 슈퍼카다. 최고속도는 시속 320킬로미터라지만 내가 그 속도로 달릴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마네티노 스위치를 스포츠 모드로 세팅하고 나선다. 루쏘는 슈퍼카에 당연한 파워와 핸들링을 지녔다. V12만큼 충분히 빠르고, 앞부분이 가벼워진 만큼 핸들링 밸런스가 더 좋은 것 같다. 접지력이 확실한 차는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 패들시프트로 조작하는 7단 듀얼클러치가 운전 재미를 더한다. 마그나라이드 어댑티브 댐퍼는 거친 차에 안락한 승차감을 제공한다. 오랜만에 대하는 유압식 스티어링휠은 느낌이 참 좋다. 리어 스티어 시스템은 코너에서 안정감을 제공하고, 회전반경을 줄여 유턴도 단번에 할 수 있게 해준다. 널찍하고 커다란 차가 단단하고 야무지다. 


다루기 쉽고 주행감각이 깔끔한 루쏘는 매일 타는 차로도 충분하다. 큰 차체도 금방 익숙해지면 문제가 아니다. 루쏘 T는 V12보다 날렵하고 간단해서 더 끌리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 V8 터보 소리가 V12만 못 하다. 운전석에서 배기음 소리가 크지 않아 창문을 슬쩍 내려본다. 그윽한 배기음 소리가 가슴을 적신다. 지금 이대로 남쪽 바다를 향해 먼 여행을 떠나는 나를 상상한다. GT를 제대로 즐기는 거다.

 

 

 

 

 

GTC4루쏘는 2도어 쿠페의 뒷부분을 왜건처럼 만든 슈팅 브레이크 스타일이다. 6시리즈 GT는 날렵한 해치백 스타일이다. 두 차의 엉덩이가 근사하다.

 

BMW 6SERIES GT
BMW 6시리즈 GT는 단번에 정의하기 어려운 차다. 세단 같은 모양에 SUV 같은 쓰임새가 경쟁자를 찾을 수 없다. 비즈니스와 레저 모두 가능하다는 게 이 차의 자랑이다. 내가 보기에 잘생긴 모양은 아닌데 우리나라에서는 인기가 좋아 많이 팔린다. 5도어 해치백 형태의 대형 세단이라고 하면 좋을까? 해치백의 실용성을 좋아하는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대형차가 많았다. 1980년대의 로버 3500이나 시트로엥 XM 같은 차가 생각난다. 아우디 A5 스포트백도 6시리즈 GT와 비슷한 차다. 굳이 이 차를 GT로 부른다면 뒷자리 중심의 그랜드 투어링을 상상한다. 네 사람이 빠르고 안락하게 먼 거리를 여행하는 거다. BMW는 이런 차의 출시 이유를 경쟁차가 많아져서라고 했다.


7시리즈와 플랫폼을 나눠 쓰는 6시리즈 GT는 너비와 휠베이스가 7시리즈 급이다. 구형인 5시리즈 GT보다 길이가 86밀리미터 늘어나 실내 공간이 무척 넓다. 그런데 신형의 매력은 겉모습이 작아 보이는 데 있다. 고급차는 때로 작아 보이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메르세데스 벤츠 S 클래스는 과거 W140으로 한 번 실패를 맛본 후 작아 보이게 하는 것에 충실하고 있다. 6시리즈 GT의 구형인 5시리즈 GT도 커다랗고 둔한 모양이 아쉬웠다. 신형은 보디가 더 커졌는데도 날씬하고 작아 보인다. 가장 큰 개선 효과로 보고 싶다.


앞모습과 뒷모습은 여느 BMW와 다를 것이 없는데 독특한 C 필러가 눈길을 끈다. C 필러에 ‘호프마이스터 킥’이 없는 유일한 BMW가 아닌가 싶다. 프레임이 없는 도어는 GT의 특징이다. 옛날부터 GT(쿠페)의 기다란 도어는 프레임이 없어 더욱 폼이 난다고 했다. 차에 오르자 고급차 느낌이 확 느껴진다. 모든 것이 독일차답게 단단하다. 시트에는 퀼팅 장식까지 더했다. 고급스러움을 지키면서 실용성을 놓지 않았다. 조금 높은 시트는 SUV 같은 성격이다. 커다란 시트가 내 몸을 완벽하게 잡아준다. 0.1톤의 두루뭉술한 몸 구석구석 굴곡을 찾아내 일일이 맞춰준다. 구형이 그랬듯 뒷자리는 7시리즈가 부럽지 않다. 널찍하고 안락한 뒷자리는 6시리즈 GT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시승차는 직렬 6기통 3.0리터 휘발유 엔진의 640i x드라이브로 M 패키지를 더했다. 340마력을 내는 엔진은 8단 스텝트로닉 기어를 통해 항상 네 바퀴를 굴린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이 5.3초이며 최고속도는 시속 250킬로미터에서 제한된다. 미끄러지는 듯한 주행질감이 마치 공중에 떠 달리는 기분을 준다. 이런 느낌이라면 여행이 ‘그랜드’해질 듯하다. 무게가 120킬로그램 남짓 줄어든 탓인지 과거에 비해 민첩하고 적극적인 기분이다. 속도를 더하면 트렁크 리드에 달린 액티브 리어 스포일러가 떠오르고, 액티브 롤 컨트롤과 네 바퀴 조향장비가 자세를 바로잡는다. 6시리즈 GT는 첨단의 준자율주행 장비를 갖췄으며 리모트 컨트롤 파킹도 할 수 있다. 복합연비가 리터당 9.2킬로미터라지만 세차게 달린 오늘은 그보다 조금 못한 듯하다.


등을 떠미는 듯한 박진감 속에 주행질감이 매끄럽다. 마치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한다. 탄탄한 주행성능에 뿌듯한 기분이고, 커다란 실내가 호화롭다. 쾌적한 공간에서 고급스러운 주행이 가능하다. 조금 어색한 스타일은 신형에서 많은 개선을 이뤘다. 이 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BMW가 이 차를 GT라고 우기는 것에 반박할 생각이 별로 없다.   
글_박규철(편집위원) 

 

6시리즈 GT는 첨단 장비가 풍성하다. 스티어링휠에 달린 버튼으로 준자율주행도 명령할 수 있다.

 

 

 

 

 

모터트렌드, 페라리, BMW

 

CREDIT

EDITOR / 서인수 / PHOTO / 박남규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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