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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GHBOR_Lifestyle

오늘의 식물생활자

바야흐로 완연한 봄이다. 서울을 비롯한 도심 곳곳에 봄이 도래한 지는 꽤 오래. 몇 해 전부터 시작된 ‘식물’의 유행은 도시에 사시사철 봄기운을 불어넣는다. 식물과 함께하며 매일 피톤치드를 마시는 오늘날의 ‘식물생활자’ 4인을 만났다.

2018.04.27

식물 처방전 ‘슬로우파마씨’ 이구름 대표, 정우성 실장 부부

신체의 질병보다 마음의 질병이 더 우려되는 시대라고들 한다. 현대인은 책과 커피, 음악 등 다양한 자가 처방으로 일상을 지탱하고 있다고도 한다. 이구름 대표와 정우성 실장 부부가 2015년에 설립한 플랜트 디자인 스튜디오 ‘슬로우파마씨(Slow Pharmacy)’는 지친 도시민에게 ‘식물’을 처방한다. 직장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식물을 보며 힐링한 두 사람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 것이 시작이었다. 의뢰받은 공간의 실내외 조경과 인테리어를 연출, 식물을 주제로 한 전시, 개별적으로는 개개인의 환경과 취향에 맞는 식물을 추천하는 등 식물과 관련해서는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처방’ 활동을 한다. 지난해 진행한 ‘에어 컨테이너’ 프로젝트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졌다. 첫아이를 출산한 지 2주도 채 안 돼 인터뷰 자리에 나와 앉았으니, 말해 뭐하겠는가. 두 사람은 슬로우파마씨가 받는 뜨거운 관심의 공로를 식물에게 돌린다.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세상에 필요한 따스한 감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식물을 찾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세상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변함없이 ‘인간’이니까요. 사람들 마음속에는 인간미를 잃지 않으려 저항하는 감성이 있는 거죠.” 부부가 로맨틱한 애칭  ‘비밀의 화원’으로 부르는 내곡동 화훼단지 온실에는 인기를 끌거나 깨끗한 식물보다 낯설고 상태가 좋지 못한 식물이 많다. 두 사람이 무척 아끼거나 건강이 좋지 못해 요양이 필요한 식물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다. 20년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박쥐란에 관심을 보이니, 이구름 대표는 자식 자랑하는 어머니처럼 환한 얼굴로 설명한다. “박쥐란은 드라마틱한 모습 덕에 국내에서도 몇 해 전 반짝 인기를 끌었지만 곧 사그라들었어요. 아열대 기후에서 생장하기 때문에 온실 밖에서는 금세 죽어버리거든요. 이처럼 식물을 들일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미적인 요소만 고려해 라이프스타일이나 환경에 맞지 않게 선택하거나 한 번에 많은 식물을 구매하는 태도도 지양해야 해요.” 지금껏 팝업으로 공간을 선보이던 슬로우파마씨가 머지않아 상수동에 쇼룸을 오픈한다. 본래 3월 중에 오픈할 예정이었지만 자신들의 이름처럼 천천히 진행되었노라 멋쩍게 웃으며 말하는 두 사람. 이들이 써내린 식물 처방전이 기대되지 않는가.

 

 

식물학적 그림 식물학도,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터 신혜우

신혜우 작가는 자신이 ‘보태니컬 아티스트’로 불리는 것이 좀 이상하고 낯설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일러스트레이터이기 전에 일과 시간을 대부분 연구실에서 보내는 식물학도이고, ‘보태니컬 아티스트’라는 명칭의 의미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원예 부문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왕립원예협회(RHS)’로부터 보태니컬 아트쇼 금메달 최고상을 2년 연속 수상한 작가의 지나친 겸손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국내에서 보태니컬 아트, 혹은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은 ‘식물 그림’이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지만 참뜻은 ‘식물학에 기초한 그림’이다. 유럽에서는 15세기 이전부터 존재한 고전적인 장르로, 식물학자들이 식물의 종을 분류하기 위해 그린 그림을 의미한다. “짐작보다 역사가 오래됐죠? 현재는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희소해졌지만 과거에는 식물학자 대부분이 그림을 그렸답니다(웃음).” 국내에는 비교적 최근 유입(?)된 탓에 그 정의가 애매해진 실정이다. 물론 우리 고전 민화에도 꽃과 나무가 있지만, 이는 기복 신앙에 기초하고 있어 보태니컬 아트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 그저 어린 시절 동네에서 ‘그림 좀 그리는 애’였다는 신혜우 작가는 식물학도의 길을 걷다가 스물이 넘어 오로지 학문적 필요에 의해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3년 첫 보태니컬 아트쇼 금메달 수상 때, 심사위원들로부터 ‘원형에 가까운 보태니컬 아트’라는 평을 듣는다. “15세기와 달리 현재는 그림을 대체할 기술이 많잖아요. 그림은 몇 달이 걸리는데, 사진을 찍는 건 순간이고. 그럼에도 식물 그림을 그리는 것은 한 개체의 장면보다 식물의 평균치를 보이는 것이 학문적으로 가치 있기 때문이에요. 인체해부학을 사진으로만 배운다고 생각해보세요. 육안으로 장기와 뼈대를 구분하기 어려울 거예요. 정제된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이 보다 쉬운 이해를 돕죠.” 17~18세기 유럽에서는 보태니컬 아트가 번성하며 대가도 많이 배출했다. “우리는 옛적 식물 화가들 생각하면 그림 관둬야 해.” 영국의 ‘큐 왕립식물원(Kew Gardens)’에 소속된 세계 정상급 보태니컬 아티스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이렇다 보니, 신혜우 작가도 자신의 그림에 만족할 리 만무하다. 수많은 국제전에 참여한 작가임에도 그림을 벽에 걸어두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일까. 당신의 그림을 무어라 정의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신혜우 작가는 고민 끝에 답한다. “글쎄요, 학술적인 도해?” 긴 논의 끝에 ‘식물학적 그림’으로 타협을 보았다.

 

 

꽃보다 일상 플로리스트 제나 제임스

“플랜테리어가 무슨 뜻이죠?” 플로리스트 제나 제임스에게 최근 핫한 플랜테리어에 대한 사견을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플랜트와 인테리어의 합성어로, 식물을 활용한 인테리어를 뜻한다고 설명하자 그는 참으로 귀엽고 한국적인 신조어라고 답한다. “뉴욕에서 꽃과 식물은 평범한 일상이에요.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구입하고, 정원이 아니라도 어디에나 있죠. 제 집만 하더라도 정글 수준인걸요.” 식물로 인테리어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도시, 뉴욕에서 온 플로리스트에게 꽃은 친숙함을 넘어 공기 같은 일상의 필수 요소다. 꽃을 능수능란하게 조합하고 연출하는 그의 작업물은 매번 예상과 기대를 벗어난다. 참신하고 대담하다. 그리고 전형적이지 않다. 자타 공인 뉴욕 최고의 플로리스트인 로베르타 벤다비드의 어시스턴트로 플라워 디자인에 입문한 제나 제임스. 그는 매거진 및 패션 브랜드와의 화보 작업, 유명 레스토랑 공간 연출 등을 맡으며 명성을 쌓아왔다. 그리고 뉴욕에서 만난 한국인 아내(메이크업 아티스트 홍현정)와 함께 1년 전 돌연 한국으로 이주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불같이 싸우고, 세상 끝까지 좇는, 미친 사랑’의 힘이었다. 한국에 정착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제나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다양한 프로젝트와 작업물을 선보였다. 2017 S/S 스티브J & 요니P 패션쇼와 럭키슈에뜨 패션쇼 애프터파티 연출, 여러 패션 매거진 화보의 플라워 연출 등. 그가 한국에서 빚어낸 가시적 성과물은 1년여 동안 이뤄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방대하다. 물론 20년간 거처한 뉴욕을 떠나 낯선 한국 땅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터.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꽃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발목을 잡았다. “아직까지 풀지 못한 숙제예요. 뉴욕에서 정원을 만든다면 꽃의 포션이 크지만, 한국에선 반대 경향을 보이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하지만 플랜테리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니 무척 고무적이네요.” 그의 창작열에 제약이 사라지는 날이 머지않아 오기를. 그날이 오면 분명 우리의 일상도 꽃보다 아름다워질 테니.

 

 

리틀 포레스트, 리틀 가든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

호모사피엔스에게는 생태계의 이상을 감지하는 생득적 능력이 없었을까? 최근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가 천착한 질문이다. 정답은 ‘노’다. 바람이나 습도, 지반의 미세한 진동으로 지구의 이상 현상을 감지하고 이후 사태를 예측하는 지구의 수많은 종처럼, 인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거듭 진화하면서 능력이 퇴화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고 오경아 디자이너는 말한다. 생명 유지를 위해 섭취하는 음식의 감별조차 스스로 하지 못하게 된 추세도 꼬집는다. “새들은 열매가 언제 익고 언제 따 먹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요. 농부들이 오늘 수확해야지, 마음먹으면 이미 쪼아 먹고 없어요. 그래서 더 얄밉죠. 그에 반해 우리는 슈퍼마켓 매니저가 추천해주지 않으면 익은 수박조차 고르지 못해요.” 그가 속초로 생활 터전을 옮겨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쬐며 ‘정원생활자’로 지낸 지 3년. 오늘의 바람은 식물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예측 정도는 가능해졌노라 말한다. 
속초시 도문동의 한적한 마을에 ‘오경아의 정원학교’를 짓고 정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뼛속까지 도시 여자였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를 벗어난 적 없었다. 방송 작가로 활동할 때는 물론, 영국 에식스 대학교에 유학하며 7년간 조경학을 공부하고 영국왕립식물원에서 인턴 정원사로 1년간 근무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도시 여자였다. 오랜 유학을 마치고 귀국 후 국내에 가든 디자인 개념을 처음 소개하고 정립하면서도 그는 도시에 적을 두었다. 그런 그가 속초로 귀촌해 정원을 꾸미기 시작하며 동식물과 공생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미약하게나마 자급자족을 실천하는 정원 생활자가 되었다. <시골의 발견>과 <정원생활자>, 그리고 최신작 <정원생활자의 열두 달>과 같은 저서도 이 시기에 집필했다. 정원과 디자인, 식물에 국한하지 않고 더 넓어진 담론. 오경아 디자이너는 식물이 이끌어낸 사유를 즐기며 오늘도 정원을 가꾼다. 

 

 

 

 

더네이버, 식물, 식물생활자

CREDIT

EDITOR / 박수현 / PHOTO / 양성모 /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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