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가베 인터내셔널 서킷 주위 도로를 채 20킬로미터도 돌아보기 전에 2018년형 포르쉐 911 GT2 RS의 콕핏 안에선 환희에 찬 웃음소리가 넘쳐흘렀다. 이 웃음소리야말로 V박스 계측 수치나 드래그레이스 기록보다 확실히 이 차의 진면목을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동 지점을 향해 맹렬히 접근할 때 입가에 가볍게 떠올랐던 미소가, 운전자를 거북이 목으로 움츠리게 만들 정도의 속력으로 거대한 반경의 우측 코너를 질주할 땐 킥킥거리는 웃음으로 변한다. 마침내 코너를 빠져나와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눈 깜짝할 새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버리는 가속력에 이르러선 말 그대로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된다. 

오 주여, 부처님, 맙소사. 

“어느 날 우리는 모여 앉아 ‘666은 악마의 숫자라고 하잖아. 좋아, 어디 한번 ‘666마력의 자동차’를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나누었죠. 그게 바로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습니다. 거의 3년이 다 돼가네요.” 테스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포르쉐 GT 라인의 보스인 안드레아스 프로이닝어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처음에는 ‘재치 있는 표현이네’라 생각하며 웃어넘겼던 게 사실이다. 물론 GT2 RS의 입이 떡 벌어지는 하드웨어와 퍼포먼스 수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차가 얼마나 빠를지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무지막지한 부품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야생에 풀어놓은 짐승’에 올라타는 실제 경험은 이론적 수치와 결코 비교할 게 못 된다. 

911 시리즈 역사상 가장 빠르고 민첩한 자동차의 엔지니어링을 완성하기 위해 프로이닝어는 프로젝트 팀에 명확히 세 가지를 주문했다. 초경량 디자인, 폭발적인 파워, 그리고 핸들링이다. 마지막은 특히 중요한 키워드였다. 수십 년 전 ‘과부 제조기’라는 악명을 달고 살았던 930S, 그러니까 마지막 뒷바퀴굴림 911 터보 못지않은 날카로운 움직임을 되살리라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운전자 손짓과 발짓을 한 치 오차 없이 따라오는 차의 몸짓이 필수였다. 

GT2 RS 기본형의 무게를 1470킬로그램으로 맞추기 위해 포르쉐는 보디 각 부위에 다량의 탄소섬유를 적용했다. 기본형 911 터보의 네바퀴굴림 시스템과 뒷좌석도 당연히 떼어냈다. 기본 모델은 티타늄 머플러와 배기라인, 마그네슘 루프를 적용하고 있다. 3만1000달러짜리 바이자흐 패키지를 더하면 지붕은 탄소섬유 패널로 교체된다. 앞뒤 유리 모두 특수 제작한 고릴라 글라스를 썼다. 포르쉐에 따르면 폴리카보네이트와 무게가 같을 정도로 가벼운 유리다. 인테리어에 흡음 소재를 전혀 쓰지 않은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기본형보다 18킬로그램 가벼운 바이자흐 패키지에는 탄소섬유 안티롤 바(앞뒤 모두), 카본 소재 타이로드 엔드 링크(와 시프트 패들), 마그네슘 BBS 휠 등이 포함된다. 이를 통해 스프링 밑 중량을 10.9킬로그램 줄일 수 있다. 

악마 같은 성능의 엔진은 기존 911 터보 S의 3.8리터 유닛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기본 엔진의 그것보다 커진 가변 지오메트리 터빈이 22.5psi에 달하는 부스트를 만들어낸다. 크랭크 내부는 완전히 새롭다. 메인 베어링을 새로 설계했고, 한층 견고해진 단조 피스톤도 연소 공간의 역학을 새롭게 계산했다. 아울러 배기 매니폴드 구동 범위도 실린더당 30퍼센트 이상 늘어났다. 압축비는 터보 S의 9.0대 1에서 9.5대 1로 낮아졌다. 결과적으로 출력은 목표치였던 666마력을 넘어섰다. 7000rpm에서 최고출력 700마력을, 2500~4500rpm 사이에서 최대토크 76.4kg·m를 발휘한다. 

마력당 무게는 2.1킬로그램이고, 매우 보수적으로 수치를 측정하는 걸로 유명한 포르쉐 자체 기록으로도 0→시속 97킬로미터 가속시간이 2.7초에 불과하다. 시속 161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8초에 지나지 않으며 8.3초면 시속 200킬로미터에 다다른다. 0→400미터 주파기록은 10.5초, 최고속도는 마지못해 시속 340킬로미터에서 제한된다. 속도제한장치를 해제하면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컵2 타이어가 버텨준다는 가정 아래) 최고속도는 시속 355킬로미터까지 올라간다. 

우리가 GT2 RS라는 감미로운 칵테일을 최초로 맛본 장소는 4.6킬로미터에 걸쳐 15개의 코너가 펼쳐지는 알가베 로드 코스였다. 급격한 경사 변화와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나는 코너 등 마치 시멘트로 된 바다에서 서핑을 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곳이다. 난 이전까지 한 번도 이곳을 달려본 적 없다. 그러니 700마력 터보 엔진이 등 뒤에 도사리고 있는 뒷바퀴굴림 911로 이 코스에 입문하는 건 매우 위험천만한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포르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우렁찬 목소리의 파워트레인이 아니었다. 

최근의 포르쉐가 모두 그렇듯 GT2 RS의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앞 16.1인치, 뒤 15.3인치)의 제동성능은 놀랍도록 안정적이었다. 직선구간을 지나 첫 번째 코너가 나타나자 시속 28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던 차는 매우 안정적으로, 순식간에 시속 100킬로미터 언저리까지 속력을 떨어뜨렸다.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는 제원표의 여러 경이로운 숫자들과 별개로 GT2 RS의 공기역학 설계와 서스펜션 튜닝은 분명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다. 

휠베이스와 컨트롤암 부품들을 공유하는 911 GT3 RS와 비교해보면 앞쪽 서스펜션은 스프링 계수가 100퍼센트 이상 향상됐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안티롤 바 강성은 절반가량 줄었다. 프로이닝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911 컵 레이스카와 비슷한 세팅이다. 뒤쪽의 경우 스프링 계수는 30퍼센트 올라갔지만 GT3 RS보다 무거운 엔진을 고려해 안티롤 바 강성은 그대로 유지했다. 부싱과 조인트는 고무 소재 대신 포르쉐 최초로 스틸 볼 조인트 방식을 썼다. 덕분에 더욱 단단한 서스펜션과 날카로운 응답성을 지닌 섀시가 완성됐다. 심도 깊은 트랙 주행을 추구하는 운전자라면 토와 캠버, 캐스터와 안티롤 바는 물론 차체 높이까지 별도로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갑겠다. 공기역학 쪽을 살펴보자면 시속 340킬로미터에서 340킬로그램에 달하는 다운포스가 만들어진다. 포르쉐에 따르면 리어 윙 각도를 최대로 조절하면 다운포스 수치는 거의 454킬로그램까지 올라간다. 

GT2 RS는 뉘르부르크링 랩타임 양산차 최고속 기록을 세웠다. 람보르기니 우라칸 퍼포만테의 1년 천하가 끝나고 다시 포르쉐의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GT2 RS는 이 모든 능력을 트랙 위에서 거리낌없이 발휘한다. 하지만 이 차의 진짜 매력은 지극히 911다운 고전적인 밸런스라고 할 수 있다. 가속페달에서 급작스레 발을 떼거나 반대로 너무 오래 밟고 있으면 종종 차체 뒤쪽이 미끄러지는데, “차가 너무 딱딱하다”고 불평하기 이전에 내 운전 실력이 ‘포르쉐를 매끄럽게 다룰 수 있을 만큼 능숙한지’ 고민해볼 일이다. 

6분 47초 3이라는 뉘르부르크링 랩타임 기록(종전 최고 기록인 람보르기니 우라칸 퍼포만테의 6분 52초 01을 뛰어넘는 양산차 최고 기록이다)에서 알 수 있듯 포르쉐 모터스포츠 부문은 이 분야에 ‘파문’을 불러오는 정도가 아니라 ‘박살’낼 만한 물건을 만들어낸 게 분명하다. 뒤 엔진 레이아웃에 순정 911 역사상 가장 큰 타이어(앞 265/35R20, 뒤 325/30R21)까지 더해진 덕에 접지력이 부족한 상황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나아가 마치 대륙붕처럼 치솟는 엔진 토크 덕분에 코너를 빠져나올 때 아무리 일찍 기어를 올리더라도 출력에 아무 지장이 없다. 가속페달을 너무 공격적으로 밟으면 언제든 파워 오버스티어 현상으로 이어지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반대 경우(언더스티어)보다 제어하기 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GT2 RS의 세팅은 뜻밖에도 일반도로 주행에 맞춰져 있다. 그리고 트랙을 벗어나 일반도로로 접어드는 순간 이 머신의 숨겨져 있던 광기가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글의 첫머리에 언급한, 보통 차였으면 지루하기 짝이 없을 우측 코너를 빠져나오며 우리가 웃음을 터뜨린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리 고속으로 코너에 진입해도 차체가 들썩이거나 통제력을 잃고 밀려나가는 낌새는 없다. 타이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끈끈이 재질로 만들어진 듯 지면을 꽉 붙든다. 

이 괴물이 직선 주행에서 보여주는 오싹한 가속력, 코너링 때 몰려오는 어마어마한 접지성능이 머릿속에 각인된 이상 구불거리는 긴 도로를 내달리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동 시점까지의 거리, 코너 진입 속도와 시점 등 물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현상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GT2는 마치 블랙홀 같은 중력을 지닌 차처럼 느껴진다. 윈드실드 너머 풍경은 워프9 속도로 항해하는 우주선처럼 시야 너머로 빨려 들어가 이내 사라진다. 속력은 매우 손쉽게 높일 수 있으며, 그 속도감은 숨이 멎을 듯 짜릿하다. 

이 정도 수준의 성능은 당연히 편의성 부분에서 얼마간의 타협이 있어야 실현 가능하다. 그러니 GT2 RS를 일상용으로 적합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뻣뻣한 서스펜션과 부족한 방음재 때문에 객실 안쪽으로 끊임없이 소음이 전달된다. 낮은 차체는 바퀴 움직임을 옥죈다. 댐핑이 공격적인 쇼크 업소버에서 GT 모델 같은 안락함을 기대하긴 힘들다. 최악의 승차감까지는 아니지만, 썩 편하진 않다. 

결과적으로 GT2 RS는 결코 다른 모델인 ‘척’하지 않는다. 터보 S 기본형에 쏟아진 ‘지나치게 좋고, 지나치게 정제돼 있으며,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비판을 이 차는 정면으로 깨버린다.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RS의 엔진 소리(터보차저의 ‘쉿쉿’ 하는 경쾌한 바람 소리와 있는 힘껏 내달릴 때 깊숙한 바닥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으르렁거림)를 듣는 순간 곧바로 ‘이 차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괴물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프로이닝어는 RS의 배기 시스템을 구축할 때 구형 935 레이스카를 참고했다. 아울러 GT2 RS가 악명 자자한 과거 포르쉐 터보의 기질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개발 과정의 이 모든 노력은 최종 결과물에 오롯이 담겼다. 덕분에 나는, 우리는 이렇게 망설임 없이 단언할 수 있다. 프로이닝어와 그의 팀이 역사상 가장 뛰어난 911을 만들어냈다고.
글_Mac Morrison(<Automob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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