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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직도 꿈꾼다

칠순이 넘은 그에게서 ‘소년’이 떠오른 것은 그와의 만남 직후다. 전광영, 한지를 소재로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그는 세계가 인정하는 작가다. 9년 만에 국내 개인전을 앞둔 그를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2주 후면 사라질 스튜디오에서, 새 스튜디오 이야기도 나눴다.

2018.03.30

 

분당 외곽의 대장동. 다 허물어지고 흙빛이 지배적인 이곳 대장동 재개발 지구에서 아직 형체를 유지한 채 우뚝 서 있는 건물 한 채가 보인다. 현대 미술가 전광영의 스튜디오다. “이사하기 전까지 공사 차량이 절대 넘어오지 못하게 스튜디오 부지 주변에 방어막도 쳐놨어요.” 재개발과 함께 동네 사람들은 일찌감치 오래된 터전을 떠났고, 마지막 남은 게 전광영 스튜디오였다. 그 버팀도 이제 2주 후면 끝난다. “내가 태어난 고향이 없어진 느낌이에요. 사진도 많이 찍어놨어요. 3층 창가에서 내려다보고 눈물도 흘렸죠.” 2002년, 이곳에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기쁜 마음으로 명함을 팔 때 ‘2002~2032’라는 숫자를 새겼다. 이 스튜디오에서 2032년까지 작업하겠다는 의지였다. 물론 재개발로 그 꿈은 이루지 못하게 됐다. “용인 고기동에 오픈할 새 스튜디오가 곧 마무리돼요. 2주 후면 이사할 거예요.” 재개발로 정든 스튜디오를 떠나야 하는 아쉬움과 약간의 분노는 건축가인 막내아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 새 스튜디오 모습에 잦아든다. 휴대폰에 저장해둔 스튜디오 사진 몇 장을 보여주며 그는 다시금 들뜬다.

 

 

주류 밖의 외로운 이단아 
독보적인 한지 조형 작업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전광영, 그는 여기까지 오는 데 참으로 힘들었노라고 고백한다. “아버지는 강원도 홍천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셨죠.” 그의 아버지는 자신이 다져놓은 성취를 발판 삼아 2대 독자인 아들이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고향인 홍천에서 국회의원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그런 아들이 난데없이 환쟁이가 되겠다고 하니, 그 실망과 분노는 대단했다. 대학 등록금은 물론 미국 유학까지, 경제적인 지원은 말할 것도 없고 부자의 연까지 끊다시피 했다. 막노동으로도 모자라 자살을 시도했을 만큼 처절하고 고단했던 그의 삶에서 미술은 고통, 시련의 동의어였다. 미술계에서 나름 짱짱한 파워를 자랑하는 미대를 나왔고, 유학파는 프리미엄이 붙던 시절이지만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늘 화단의 이단아로 내몰렸다. 주류 밖에서 30년을 근근이 버티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찾아든 것은 50세, 무척 늦은 나이였다. 1995년 그는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집합’ 연작을 만난다.   
“100년 전 고서로 삼각형 스티로폼을 싸고 종이실로 묶어 캔버스 위에 붙이는 방식인데, 1천만 명이 넘는 세계 예술가 중 나하고 같은 작업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미술계를 떠나야 할까 고민하던 무렵, 어릴 적 큰아버지의 한약방 천장에 걸린 약봉지가 떠올랐다. 한지로 고이 싼 약봉지와 약을 정성스레 달이는 아낙네의 모습. ‘정성’ 그리고 한국의 ‘정’이라는 단어가 그의 가슴을 쳤다. 곧바로 그간 천착해온 추상 회화를 내려놓고 한국인의 정신이 깃든 ‘한지’를 연구했다. “우리의 한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에요. 우리 민족의 얼이죠. 한지로 <논어>, <맹자>, <시경> 등 여러 책을 인쇄했고, 그 책은 훈장, 학생이 읽고, 대감이 읽고,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천민 역시 대감에게 가져다주는 길에 만지기도 하고.” 고서 속에는 우리 민족의 발자취, 변천사가 깃들어 있다. 이 책의 주인은 85년 전 여자였을까? 정경부인이었을까? 전광영은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싸듯 고서에 싸서 ‘집합’ 연작으로 선보였다. 처음에는 신문지를 도톰하게 묶은 후 한지로 쌌다. 문제는 무게였다. 신문지 무게 때문에 캔버스가 버틸 수 없었고, 그 대안이 스티로폼이었다. 수천, 수만 개의 삼각형 스티로폼을 고서로 싸고 손으로 꼰 종이끈으로 묶어 그것을 다시 캔버스에 조각하듯 이어 붙였다. “서양이 ‘박스 컬처’라면 우리는 보자기 문화예요. 보릿고개 시절에도 친정에 온 딸에게 뒤주에서 좁쌀, 팥을 꺼내 보따리에 싸줬죠. 신기하게 박스와 달리 보자기는 모양이 좀 망가지긴 해도 하나를 더 구겨 넣을 수 있죠. 그게 바로 ‘Warm Hart’, 정이고요. 정이라는 말은 이 지구상에 없는 단어예요.” 우리의 옛 보자기를 현대적 조형법과 조합해 완성한 그의 ‘집합’ 연작은 세계를 매료시켰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한지를 8000번 싸고 실을 8000번 묶어, 다시 8000번 손을 거쳐 캔버스에 붙이는, ‘미친’ 동양 예술가의 정성과 집념은 그들에게 경이로움 자체였으니. “해외 전시 간담회 때 일이에요. 내 작업에 고서가 사용된다고 하자 한 평론가가 벌떡 일어나더니 화를 내는 거예요. ‘너는 너희 나라의 고서를 잘라서 사용하는 나쁜 사람이다.’ 고서를 오리지널로 해석한 언어적 오류 때문이었죠. 내가 쓰는 고서는 오리지널이 아니라 올드 북이라고 설명해줬죠.” 한지 안에 담긴 특유의 정감과 현대적 조형성이 어우러진 전광영의 화면. 작은 삼각형 개체가 모여 거대한 하나를 이루듯, 그의 집합 연작은 압도적 오라를 풍긴다. “나는 머리가 나빠 나만의 작업을 찾는 데 50년 걸렸어요. 그래도 후회하지 않아요.” 그가 중시하는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히스토리. 나만의 철학, 도구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내내 강조한다. 그에게 ‘한지’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철학이자 가장 값진 히스토리다.  

 

한 화면을 완성하는 데 한지로 싼 수천 수만 개 삼각 스티로폼이 사용된다. 

 

 

 

(위) 그의 작업실에는 삼각 스티로폼이 컬러별로 산을 이루고 있다. (아래) 새로운 ‘집합’ 연작은 자연에서 색을 뽑았고, 무수한 색 실험을 거쳤다.  

 

비로소 ‘색’을 입다 
“2008년 이후니까 9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이네요.” 그간 여러 이유로 한국 갤러리에 실망해 한국에서는 더 이상 전시를 열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했다는 그를 설득한 것은 PKM갤러리였다. 장사꾼에게 납품하듯 미술을 하고 싶지 않다는 전광영. 4월 6일부터 6월 5일까지 열릴 이번 개인전은 70년대 초기 그의 추상 평면 회화부터 트레이드마크인 한지를 이용한 입체적 회화 신작까지, 전광영의 독보적인 작업 세계를 망라한다. “전시의 타이틀은 ‘컬러’가 될 거예요. 쪽, 오미자 등 자연에서 색을 뽑아 한지에 입혔죠.” 오래된 한지 서적을 이용한 기존 작업과 달리 신작 ‘집합’ 시리즈는 자연의 색을 더해 꿈꾸듯 더욱 화려해졌다. “나이가 들면 무미건조해지니까 한편으로 돋보이고 싶어져 빨강, 핑크색을 고른다는데, 아마 나이가 먹는 모양입니다(웃음).” 그의 화폭은 그윽한 한지의 세월과 깊이를 넘어 이제 따뜻한 색을 입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는 처음 공개됩니다. 모네의 수련이 떠오르지 않나요? 아주 현대적이고 따뜻하죠. ‘Dream’이라 제목을 붙였는데, 내가 소년이 된 거야.” 탐탁지 않은 정부의 예술 정책과 화단을 꾸짖던 대가의 격한 목소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그는 이내 신난 소년으로 돌변했다. “혼자 꿈꾸는 거예요. 스위스 열차를 탔는데, 밖이 너무 아름다운 거야. 신이여, 당신은 위대하다.” 여전히 작품 앞에 서면 소년이 되고 마는 전광영. 50년, 이제야 비로소 미술을 ‘쬐끔’ 알 것 같다며 그는 웃는다. 오는 9월, 고기동 새 스튜디오 옆으로 그의 이름을 내세운 ‘전광영미술관’이 문을 연다. “오래전부터 다음 세대를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했어요.” 사비를 들여 미술관을 오픈한다고 했을 때, 아들들은 아버지의 뜻을 선뜻 받아주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미술관이니 개관전은 전광영의 개인전이 아닐까 싶지만 그는 단호하게 ‘노’를 외친다. “깜짝 놀랄 만한 세계적인 작가의 개관전이 확정돼 있어요. 나는 2년 후에나 할 생각입니다.” 미술관은 어둡고 긴 터널을 힘겹게 뚫고 온 칠순의 그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작은 초석이자 그들에게 보내는 빛과 희망의 이야기인 셈이다. 처절했지만 그리하여 더욱 빛나는 전광영의 화폭이 이 봄 따스한 빛으로 물든다.   

 


(위에서 부터) Chun Kwang Young, Aggregation14-NV057(Dream20), 2014,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163×313cm,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Chun Kwang Young, Aggregation17-DE101, 2017,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180×157cm,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그의 한지는 평면을 넘어 입체 조각으로도 탈바꿈한다.

 

 

 

 

 

더네이버, 인터뷰, 전광영

CREDIT

EDITOR / 설미현 / PHOTO / 박우진 /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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