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로니무스 보스 증후군이라니. 정말 못 말려!”

“사실은 살바도르 달리가 했던 이야기야. 병명을 만든 건 나지만.”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공격>의 한 대목이다. 주인공은 ‘히에로니무스 보스 증후군’을 ‘심인성 구토 강박증’이라 설명한다. 부연하자면 이렇다. 주인공은 콰지모토라는 별명의 소유자로, 자신의 외모가 마치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그림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적 충격을 주어 구토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달리가 실제로 저런 말을 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달리를 비롯한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보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캐나다 서커스의 명맥을 잇는 세븐 핑거스와 덴마크 코펜하겐의 리퍼블리크 시어터가 합작한 서커스 <보스 드림즈>를 이해하려면, 바로 이 보스의 그림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롬 보스(Jerome Bosch)라고 불리는 이 화가의 본명은 제로니무스 보스(Jheronimus Bosch). 셋 다 뜻은 같으나 표기에 따라, 라틴어로는 히에로니무스, 영어로는 제롬이 된다. 15세기 네덜란드에 살았던 보스는 종교화를 많이 남겼는데, 그의 종교화는 동시대 화가의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요는 구토를 유발하는 기괴한 풍경을 그리면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다는 것. 7가지 죄악을 다룬 ‘칠죄종(七罪宗)과 사말(四末)’, ‘쾌락의 동산’이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데, 두 작품에 대해서라면 설명을 더해도 모자람이 없겠다. 두 작품이 <보스 드림즈>의 주요 모티프기 때문이다. ‘칠죄종’은 인간의 7가지 죄악인 탐식, 탐욕, 교만, 정욕, 나태, 시기, 그리고 분노를 그린 테이블화다. 보스는 7가지 죄를 둥글게 그리고, 테이블 네 모서리에 죽음, 심판, 천당과 지옥의 사말(四末)을 그렸다. 그리고 한가운데에 예수를 그려, ‘신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넣음으로써, 중세 교회의 교리를 전파했다. ‘쾌락의 동산’은 세 폭으로 된 제단화로, 왼쪽 날개에는 에덴동산이, 오른쪽 날개에는 지옥이, 그리고 가운데에는 타락한 인간상이 그려져 있다. 양쪽 날개를 접으면 한가운데 천지 창조의 순간이 그려져 있고, 근심 어린 눈빛으로 이를 바라보는 조물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보스 드림즈>는 바로 ‘쾌락의 동산’ 중 ‘현세의 타락한 인간들 모습’으로 시작한다. 
극장에 들어서면 관객은 대형 스크린 위로 투사된 ‘쾌락의 동산’을 만나게 된다. 관객은 한 미술사학자의 콘퍼런스에 참여한 일원이 되어 그림에 대한 해석을 듣게 되는데, 이런 내용보다는 그들의 마법과 같은 무대를 설명하는 게 나을 듯싶다. <보스 드림즈>에서는 보스의 작품이 그냥 대형 스크린에 투사되는 정도로 그치는 게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특히 ‘칠죄종과 사말’은 마치 거대한 룰렛처럼 움직이는데, 이는 7죄가 마치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단원 6명은 그림 속 인물이 되거나 살바도르 달리, 짐 모리슨과 같은 현실 속 인물이 되어 그림 속을 여행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도망치려는 인간이 보이고, 또 다른 장면에서는 어찌하지 못해 주저앉는 인간이 보인다. 불의 지옥을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간들의 모습에선 그들을 응원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무엇보다 <보스 드림즈>의 미덕은 와이어 액션, CG, 시각 특수 효과(VFX), 3D 애니메이션 등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세븐 핑거스의 단원들은 보통 사람은 불가능한 움직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을 곡예를 화면과 정교하게 일치된 동작으로 선보인다. 이것이야말로 이 공연에 매료되게 만드는 이유다. 이렇듯 보스의 회화와 서커스, 거기에 그룹 도어스의 음악까지 들을 수 있는 치명적 매력의 서커스 <보스 드림즈>는 4월 6일부터 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 이 글을 쓴 김일송은 공연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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