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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Lifestyle

캔버스 위에 내린 이른 봄

세상의 모든 피어나는 것들은 아름답다. 찬란한 색채와 영감을 입은 캔버스 위에도 이른 봄이 내려앉았으니. ‘찬란’은 봄의 캔버스 앞에 지극히 겸손한 단어다.

2018.03.12

Silent Winds Arcadia, 2014, Lacquer, Dust, Glitter, Mixed Media and Acrylic on Canvas, 200×160cm

 

Psychotropical Samedan, 2011, Lacquer and Acrylic on Canvas, 110×90cm, 이미지 제공: 조현화랑

 

꽃송이와 은하계 사이 티에리 푀즈
흩뿌려진 듯 자유롭게 화폭을 노니는 꽃. 티에리 푀즈(Thierry Feuz)는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그것을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형태, 화려한 색채, 그리고 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캔버스에 담아낸다. 낯선 빛으로 가득한 캔버스 안 풍경이 불꽃처럼 피어나는 꽃송이들인지, 미세 현미경을 통해 바라본 미생물의 세계인지, 혹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별들로 가득한 은하계의 모습인지 작가는 분명히 정의하지 않는다. 다만, 캔버스 위 색채의 향연을 통해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듯한 시각적 유희를 안겨준다. 작가의 손끝 리듬을 타고 태어난 그림은 초자연적 생명력을 전한다.

 

개나리와 달, 2006, Acrylic on Canvas, 112×145.5cm, 이미지 제공: 조현화랑

 

자유분방한 판타지아 김종학
평범한 꽃이 그와 함께 새롭게 태어났다. 1979년 서울을 떠나 설악산으로 거처를 옮긴 김종학. 자연이 그를 치유했다는 그의 말처럼 무심히 피는 꽃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생명의 근원, 에로스, 죽음 등 다양한 함축성을 지닌 꽃은 시들 수 없는 미술의 모티프다. 실재하는 꽃과 관념의 꽃이 어우러진 김종학의 꽃은 육감적인 회화의 마티에르 속에 핀 ‘판타지아’다. 20여 년을 꽃과 풍경을 그린 그에게 꽃은 자유로움이자 환상이다. 그 만개한 꽃이 설악을 타고 이곳에 당도했다.

 

 

Dry Plant - 17001, 2017, Oil on Canvas, 130×130cm, 이미지 제공: 갤러리바톤

 

시작과 끝 윤석원
‘Dry Plant’. 제목은 마른 식물이지만 화폭을 지배하는 것은 알 수 없는 힘과 시들지 않은 생명력이다. 기억과 기록, 현재와 과거 등의 세계를 캔버스에 담는 윤석원.  ‘마른 식물’ 연작은 생명 있는 것들의 시작과 끝,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다른 생명에게 무엇을 빚지는지, 또 다른 존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말라가는 식물에 빗대어 묻는다. 세밀한 묘사와 모호한 형태, 톤 다운된 색감이 주는 정서. 절제미와 적나라한 과감성이 공존하는 그의 화폭은 뜻밖의 생명력을 전한다.

 

 

Flower in Hand, 1981, Photocopy, 26.7×21.6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회화인가, 사진인가 레슬리 시프
“나는 결코 페인팅을 그만둔 적이 없다. 단지 현대적인 도구로 페인팅을 시작하고자 했을 뿐이다.” 레슬리 시프(Lesley Schiff)의 ‘플라워 인 핸드’. 이 작품은 회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사진이다. 디지털 시대가 열린 1980년대. 이 사진은 1981년 작으로, 사진이라는 복제 예술의 실험적인 서막을 엿볼 수 있다. “내가 사용하는 도구가 얼마나 첨단 기술이건 간에 나는 항상 나 자신을 화가라고 생각한다. 단지 유화를 그리지 않을 뿐. 나는 빛으로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빛으로 그린 그의 꽃은 신비한 기운마저 깃든다.

 

 

(왼쪽)Untitled 1219, 2017, Oil on Canvas, 130.3×97cm (오른쪽)Untitled 1232, 2017, Oil on Canvas, 130.3×97cm, 이미지 제공: 조현화랑


너무도 사실적인 이광호
그의 작업은 다분히 노동 집약적이고 강박적이기까지 하다. 사실성을 뛰어넘는 회화적 묘사가 돋보이는 이광호의 ‘선인장’ 시리즈다. 2006년 이후 시작된 ‘선인장’ 시리즈는 언어적 설명이 배제되고 감각적인 부분이 극대화되어 드러난다. 작은 선인장들은 거대하게 확대되면서 ‘선정적’이거나 오히려 ‘동물적’인 모습으로 하얀 캔버스 화면을 채운다. 원색의 꽃봉오리와 비현실적으로 거대해진 선인장은 더욱 강렬하게 우리를 유혹한다. 극도의 사실성과 추상성, 감각적인 촉감이 더해진 선인장에 붉고, 노란 꽃이 피었다.

 

 

(왼쪽)PF 01, 2008, Archival Pigment Print on Canvas, 152×70cm (오른쪽)PF 02, 2008, Archival Pigment Print on Canvas, 152×7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종이꽃에 생명을 더하다 구본창

단아한 백자 위에 말간 종이꽃이 피었다. 지화(紙花) 혹은 가화(假花)로 불리는 종이꽃은, 제철이 아니면 구하기 힘든 생화를 대신해 한국 전통문화 전반에서 비중 있게 쓰였다. 조선 시대 궁중의 잔칫상에 빠지지 않고 오를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고, 민간으로 퍼져 나간 다음에는 방 안의 장식품으로 쓰였다. 불교에서는 불전을 장식하여 부처를 공양하는 도구로, 무속에서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하여 신화(神花)라 부르기도 했다. 구본창은 생명이 없는 전통 지화를 조선백자와 같이 연출했고, 마치 살아 있는 꽃처럼 생명을 불어넣어 한 폭의 민화를 탄생시켰다.

 

 

Flower and Two Women, 1990, Acrylic on Canvas, 162×122cm, 이미지 제공: 아라리오갤러리


이국적인 꽃과 여인 정강자

정강자의 ‘꽃과 두 여인’을 본 순간 불현듯 타이티섬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퍼포먼스 1세대 대표 주자이자 197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여성과 남성, 전통과 현대와 같은 기존의 이분법적인 질서를 극복하고자 애쓴 정강자. 자신이 마주한 경계와 틀을 해방시키고자 했던 작가는 남태평양, 아프리카 등 세계 오지를 여행하며 그곳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았다. 이국적인 풍경과 강렬한 원색 대비가 시선을 사로잡는 그의 화면은 짙고 따뜻한 그만의 환상을 드리운다. 작년 7월 타계 후 그의 첫 회고전이 아라리오갤러리 서울과 천안에서 열리니, 그 경계 없는 환상의 세계를 직접 경험해도 좋겠다.

 

 

(위)Towards, 2017, Color on Fabric, 160×130cm (아래)Towards, 2017, Color on Fabric, 180×280cm, 이미지 제공: 학고재 갤러리

 

자연의 본질을 향하여 김보희
김보희는 20대였던 1970~80년대부터 자연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90년대 이후로는 제주의 바다를 그렸고, 2005년 화폭을 따라 거처를 아예 제주도로 옮겼다. 이제 그는 자연에 대한 경애와 예찬을 강조하던 시기를 지나 자연의 본질에 한층 가까워졌다. 자연의 근원이자 새로운 생명의 상징인 씨앗과 열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한 것. 아울러 그의 화면 위에는 다양한 상징적 요소가 더해졌다. 이 모든 것은 자연의 내면으로 더욱 깊숙이 침투하기 위한 것. 작품 제목부터 ‘투워즈(Towards)’가 아닌가.

 

 

Nobody is There - Somebody is There, 2014, C-print, 118×79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두 가지 꽃의 공존 최재은
만개한 꽃과 말라버린 꽃이 한 화병에 담겼다. 최재은의 사진 연작 ‘Nobody is There - Somebody is There’다. 조각, 설치,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장엄한 스케일과 치밀한 조형성을 구현해온 최재은. 그는 시간의 무한한 흐름과 유한성 속에서 그것을 지각하려는 인간의 시선, 그리고 삶의 순환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는 ‘순환’의 의미를 삶과 죽음, 육체와 정신, 그리고 빛과 어둠과 같은 이분법이 아닌 두 요소들이 공존하는 상황을 바라보고자 했다. 말라버린 꽃과 만개한 꽃이 담긴 화병. 거기엔 보잘것없는 꽃과 절정의 꽃이 공존하고 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공존을 이룬다. 

 

 

 

 

 

더네이버, 아트, 미술

CREDIT

EDITOR / 설미현 / PHOTO / /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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