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탄환

CAR&TECH 마법의 탄환

슈퍼 SUV, 과연 실현 가능한 존재일까?

2018.03.14

자, 불편한 진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람보르기니 우루스는 LM002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 ‘람보 람보(Rambo Lambo)’라고 불렸던, 카운타크 엔진을 얹은 람보르기니 SUV로 1980년대 아랍 석유 부호들이 좋아했던 그 LM002 말이다. LM002는 람보르기니에 오프로더 정통성을 부여했고, 덕분에 람보르기니는 SUV 제작에 가장 합당한 자격을 가진 슈퍼카 브랜드가 됐다. 그러나 난 LM002와 우루스를 몰아보고 두 차 사이에는 엠블럼 이외에 별다른 연관성이 없음을 깨달았다.

보디 온 프레임 구조로 완성된 무게 3톤짜리 LM002는 미국 육군을 위해 제작한, 엔진을 뒤쪽에 얹은 군용차 ‘치타’를 바탕으로 개발됐다(하지만 미군은 AM 제너럴의 험비를 채택했다). 반면 ‘순수 민간용’ 우루스는 폭스바겐 그룹의 MLB 에보 아키텍처를 베이스로 한다. 아우디 Q7, 벤틀리 벤테이가 등이 사용하는 플랫폼으로, 휠베이스를 줄인 버전은 포르쉐 카이엔과 폭스바겐 투아렉의 근간을 이루기도 한다. 아울러 아우디 A4도 이 MLB에서 파생됐다(맙소사).

LM002는 카운타크에 얹었던 5.2리터 V12 엔진의 토크를 높인 버전을 썼다. 우루스 역시 아벤타도르의 6.5리터 V12 엔진을 손질해 얹었을까? MLB 플랫폼이라는 힌트에서 알 수 있듯, 아우디의 4.0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을 얹는다. 물론 우루스에 쓰인 건 650마력, 최대토크 86.kg·m의 고성능 버전이다. 왜 벤테이가처럼 600마력을 내는 W12 엔진을 쓰지 않았을까? “중국 때문이죠.” 람보르기니 연구개발 담당 이사 마우리치오 레기아니는 이렇게 말한다. 중국은 배기량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세금 정책을 펼치고 있다. 배기량 4.0리터가 넘으면 심각할 정도로 높은 할증이 붙는다.

부드럽지 않은 모습 핼러윈 의상 같은 위장막을 벗겨낸 우루스와 거의 유사한 렌더링이다. 보기 좋은가?

우루스는 거대 시장 중국을 공략하는 모델이다. 중국은 이제 미국이나 유럽만큼 자동차 제품 기획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때문에 우루스는 12기통 모델이 나오지 않는다. V8 한 모델로 승부를 걸겠다는 결정은 우루스가 람보르기니 최초로 토크컨버터 방식의 8단 자동변속기(ZF제)를 갖추게 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참고로 LM002는 변속레버 작동 거리가 아주 긴 5단 수동변속기를 달았다. 어쨌든 토크컨버터를 쓰는 우루스는 아벤타도르의 싱글클러치 변속기처럼 화끈하고 과격하게 변속하지도, 우라칸의 듀얼클러치 변속기처럼 번개같이 빠르게 변속하지도 않는다. 변속이 빠르고 믿음직스럽긴 하지만 난 아우디가 S8에 사용하기 위해 조율한 버전이 더 좋다(같은 변속기다). 배기 사운드는 미국 일부 지역의 소음 인증 규정 때문에 스포츠와 코르사 모드에서조차 기대에 못 미친다. 람보르기니라면 당연히 그래야 할 만큼 과격하거나 악랄하지 않다.

난 우루스가 빠를지언정 SUV 같은 느낌이나 람보르기니 같은 느낌은 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앞의 예상은 맞았고 뒤의 것은 틀렸다. 람보르기니는 우루스의 ‘제로백’이 3.6초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시승한 우루스 중 한 대에는 V박스 데이터 기록장치가 달려 있었다. 난 론치 컨트롤을 활용해 시속 100킬로미터까지의 가속을 3.59초 만에 끊었고 레기아니는 이를 3.43초까지 앞당겼다. 그 전날에는 영국 저널리스트 한 명이 3.34초를 기록했다. 레기아니는 오늘 조건이 더 좋지 않은 것 같다며 나를 위로했다.

우리는 우루스를 넘겨받았을 때 0→시속 97킬로미터 가속 시간이 3.2초(또는 그 미만) 정도 되리라고 생각했다. 미터 단위를 즐겨 쓰는 유럽 업체들은 우리가 400미터(쿼터마일) 도달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루스는 아마 도달 시간이 11.5초 이하일 것이고 통과 속도는 시속 193킬로미터 이상일 것이다. 람보르기니가 밝힌 우루스의 최고속도는 시속 305킬로미터. 우리 예상 역시 이와 비슷하다.

람보르기니는 포르쉐가 소유한 전설의 나르도 기술 센터에서 우리에게 두 대의 우루스를 주고 몰아볼 수 있도록 했다. 16개 코너로 이루어진 6.3킬로미터 길이의 핸들링 테스트 트랙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랙 중 하나다. ‘과연 우루스도 람보르기니다울까?’라는 의심은 2바퀴를 돌기 전에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직선 구간에서 시속 265킬로미터 이상으로 내달리다 브레이크를 거의 밟지 않은 상태로 왼쪽으로 크게 굽은 첫 번째 코너를 시속 250킬로미터로 들어갔다. SUV로 그런 속도라니. 제정신이란 말인가?

우루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브레이크를 갖춘다. 앞쪽은 17.3인치 카본세라믹 디스크를 10피스톤 캘리퍼가 움켜쥔다. 당신이 잘못 본 게 아니다. 피스톤이 10개나 된다. 뒤쪽도 무려 14.6인치 디스크와 6피스톤 캘리퍼의 조합이다. 레기아니는 이보다 큰 브레이크를 달면 더 좋겠지만 기본형인 21인치 휠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기본 모델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피렐리 P제로 코르사 타이어를 끼운 22인치 또는 23인치 휠을 달 수도 있다. 200만 달러가 넘는 센테나리오도 썼던 그 타이어에는 람보르기니 팬들을 위해 ‘L’자가 각인되어 있다.

우루스는 각각 20바퀴 남짓 열심히 달렸고 브레이크와 타이어는 커다란 람보르기니의 속도를 줄이는 임무를 완벽하게 해냈다. 리어 스티어링과 토크 벡터링은 우리가 고속 트랙에서 대형 SUV를 내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다른 두 대의 우루스가 내 옆을 달리는 걸 봤을 때에야 난 내가 거대한 크로스오버를 몰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뒤로 며칠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내가 확인한 우루스의 막대한 운전재미에 놀라워하고 있다.

무게는 얼마나 나갈까? 레기아니는 몸집에 비해 가벼운 2155킬로그램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이탤리언들이 차 무게를 재는 방법은 우리와 다르다. 그래서 나는 그보다 조금 더 무겁다고 예상한다. 벤틀리 벤테이가 W12가 2564킬로그램이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BMW X6 M이 2353킬로그램이니 우루스는 2270킬로그램 정도가 될 듯하다. 선의의 거짓말을 제쳐두더라도 우루스는 충격적일 만큼 뛰어난 차다. 이 슈퍼 SUV에 대한 내 호감은 람보르기니가 우리를 랠리 스테이지나 다름없는 고속 비포장 코스에 풀어놓았을 때 한층 더 커졌다. 우리는 SUV용 피렐리 스콜피온 타이어를 끼운, 다소 ‘빈약한’ 21인치 휠이 달린 우루스를 타고 세 가지 오프로드 모드 중 하나를 시도해볼 수 있었다. 우루스에는 스트라다(포장도로), 스포츠, 코르사(트랙) 외에 사비아(모래), 테라(비포장), 네베(눈길) 모드가 있다. 모드는 변속레버 왼쪽의 작은 레버로 바꿀 수 있다. 람보르기니는 이 레버를 탬버린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탐부렐로(Tamburello)라고 부른다. 이유는 없다. 레기아니가 그렇게 정했다.

비포장도로에서는 마치 포드 랩터를 튜닝 업체 헤네시가 손질한 ‘벨로시랩터’를 모는 듯한 느낌이었다. 차체가 더 낮을 뿐이었다. 랠리 스테이지에서는 토크가 훨씬 더 두드러졌다. 기어를 3단 이상 쓸 일이 전혀 없고 대부분 2단으로 달렸으니 말이다. 심지어 1단을 유지해야 할 만큼 아주 급격한 코너도 두 곳이나 있었다. 사륜구동 시스템을 쓰고 있지만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차체 뒤쪽이 화려하게 날아가고 스티어링 반응이 아주 민첩해 미끄러지는 차체를 쉽게 바로잡을 수 있다. 우루스는 이처럼 오프로드를 마치 로켓처럼 달려 나갔다. 정말이지 야수가 따로 없다.

하지만 우루스를 가진 사람들이 과연 이 초고가 슈퍼 SUV를 오프로드로 끌고 갈까? 람보르기니는 몇몇 사람은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들은 스포티한 디자인의 일반 모델과 오프로드에 특화된 듄(Dune) 모델을 내놓는다. 후자는 접근각과 이탈각을 키우기 위해 차체 앞뒤를 손질한 버전이다. 람보르기니는 듄 모델에만 세 가지 오프로드 모드를 모두 넣고 일반 모델에는 네베(눈길) 모드만 더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사실 람보르기니가 아직 고민 중인 게 몇 가지 더 있다. 우루스의 구성은 5월쯤에야 완전히 확정될 예정이다. 시승한 테스트카(몇몇 차들에는 임시로 아우디 부품들이 쓰였다)는 그들이 검토하고 있는 부분을 파악하고 느낄 수 있도록 제작됐다. 우리의 의견을 수용하기 위해서다. 내가 생각한 개선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법적으로 허용되는 한도 내에서 더 요란한 사운드를 만들 것. 둘째, 코르사 모드에서 변속 시기 경고음을 낼 것. 셋째, 코르사 모드에서 스티어링 기어비를 더 조일 것. 넷째, 오프로드에서 변속 시간 단축을 위해 스포츠 오프로드 모드-이름은 테라벨로체(TerraVeloce)라고 하면 좋겠다-를 만들 것. 이 네 가지 개선 사항만 빼면 난 이 람보르기니의 최신 고성능 SUV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포르쉐가 카이엔을 선보였을 때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르쉐는 SUV를 팔아 연구개발 재원을 충분히 확보하면 911이 더 좋아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람보르기니 역시 이와 똑같은 비난을 받을 거라 확신한다. 하지만 우루스에서 비롯되는 자금은 아벤타도르와 우라칸이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종류의 차로 남을 수 있게 도울 것이 분명하다. 당신이 람보르기니를 좋아한다면 반드시 우루스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착시현상 우루스는 마치 지붕을 낮춘 패스트백처럼 보인다. 하지만 22인치 휠을 달고 있고 옵션으로 23인치 휠도 마련된다.

먼지 속 질주 람보르기니는 SUV다운 성능을 간과하지 않았다. 자, 이제 가족이 함께 즐기는 랠리를 예약할 때다.

우루스의 대부 람보르기니의 CTO 마우리치오 레기아니가 자신의 SUV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역대급 우루스는 역대 람보르기니 가운데 실내 공간이 가장 크다. 카본파이버 내장재도 가장 많이 쓰였다.

모터트렌드, 자동차, 우르스

CREDIT

EDITOR : 류민PHOTO : <Motor Trend>Photo